"20여년 나를 뛰게 한 건 절박함…기술·인재로 미래차 전쟁 승자될 것"

10년 전 만도 되찾았을 때의 초심 잃지 않을 것
올해 자율주행 해외기업 M&A 성사 기대

내 월급보다 더 주고라도 인재 꼭 모셔올 것
2020년엔 매출 14조 글로벌기업 도약

만난 사람=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경영전략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학여역수행주 부진즉퇴(學如逆水行舟 不進則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63)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글귀다. 배움은 강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과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되레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정 회장의 부친인 고(故) 정인영 한라 명예회장이 생전에 좋아한 문구다. 정 회장은 “사업도 이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퇴보하게 된다”고 했다.

1일 서울 신천동 한라그룹 본사 10층 집무실에서 미래 자동차전쟁의 선봉에 서 있는 정 회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전 한라그룹 배지를 옷깃에 달았다. 마치 각오를 다지는 듯했다.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빼곡히 적은 메모와 자료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동차를 포함해 세계 제조업 변화를 얘기할 때는 “긴장된다” “두렵다” “절박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인터뷰 말미엔 “2008년 3월 권토중래(捲土重來: 일에 실패한 뒤 다시 힘을 쌓아 재차 도전함)의 심정으로 만도를 8년 만에 되찾아왔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해가 그룹 창립 55주년이었죠.

“맞습니다. 동시에 제가 그룹 회장을 맡은 지 20주년 되는 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영광과 환희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죠. 그걸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뢰받는 기업,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이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은 멀죠.”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한숨을 내쉬며) 1997년 외환위기 때죠. 그해 1월 그룹 회장에 취임했는데 1년 만에 회사가 어려워져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부도 난 계열사에선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경영자로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참담하고 아팠습니다.”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지요.

“당연히 2008년 3월 만도를 되찾았을 때였습니다. 권토중래 심정으로 만도를 찾아왔죠. 그때 간절하게 원하면 이뤄진다는 신념이 생겼습니다. 올해는 마침 만도를 찾아온 지 꼭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정 회장이 좌우명을 설명하고 있다.

▷타계한 부친 생각이 가끔 나시겠네요.

“2006년 돌아가신 아버지는 ‘오직 기술로 승부하라’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만도 경영권을 되찾은 직후 연구개발(R&D)에 사활을 건 이유죠. 요즘도 어려울 때나 큰 결정을 앞두고선 경기 양평에 있는 선친 묘소를 찾아갑니다. 그냥 위로가 됩니다. 아직도 혼자 뭘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정 회장은 만도와 부친 얘기가 나오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한라그룹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만도를 사모펀드인 선세이지에 팔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되찾았다. 만도는 주력 제품인 조향·현가·제동장치와 각종 센서 기술을 조합한 자율주행 기술에서 국내 부품회사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출은 한라그룹 전체 매출(약 9조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작년 11월 만도 대표이사로 5년 만에 복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도는 기술이 전부인 회사예요.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가까이서 직접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룹 회장으로만 있으니 갈 때마다 방문자 비슷해지더라고요. 복귀 후 석 달간 매주 판교에 있는 R&D센터를 찾았습니다. 10대 현안을 분석하고 3개년 중장기 계획도 세웠죠.”

▷지난해 한국 자동차산업이 여러모로 어려웠습니다.

“한라그룹은 2008년 만도를 되찾아온 뒤 매년 성장해왔습니다. (집무실 벽에 걸린 글귀를 가리키며) 그런데 지난해엔 처음으로 성장하지 못했어요. 주요 고객사인 현대·기아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 중국 자동차회사 등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외부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우리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패권이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 속도가 엄청납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죠. 너무 두렵습니다. 보쉬나 콘티넨탈 등 ‘슈퍼파워’들과 싸우려면 뭔가 큰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보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움직일 겁니다.”

▷R&D 투자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차량 섀시시스템과 자율주행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5% 정도입니다. 이 비중을 보쉬나 콘티넨탈 수준인 8%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판교 R&D센터를 중심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등 주요 거점에 R&D 투자를 계속 늘려나갈 것입니다.”

▷해외 경쟁사와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요.

“솔직히 추격자였죠. 항상 보쉬나 콘티넨탈이 제작해온 제품을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미래차 기술에 대한 선행 투자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선제적 투자로 2~3개 기술 옵션을 보유하고 고객사에 선택하라고 할 정도가 돼야죠. 그래야 글로벌 부품사들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정 회장이 작성한 빼곡한 메모와 자료.

▷미래 새로운 먹거리를 알고 싶습니다.

“일단 운전자 개입 없이 차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 4단계에 맞춰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첨단 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분야에선 어느 정도 기술력도 갖췄습니다. 전자식 통합 브레이크의 경우에는 이미 최고 수준입니다. 또 국내외 기업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기술 흡수력을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자율주행 등 미래차 분야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습니다.”

▷구체적 계획이 있습니까.

“혼자 모든 부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레이더(전파탐지장치)에 강하지만 라이더(레이저센서) 분야가 약하죠. 이를 보완할 협업 대상이나 인수 대상 기업을 보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유럽과 미국 기업 세 곳을 놓고 저울질 중입니다.”

▷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까.

“기존 사업과 연계된 신사업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올해는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자동차 부품과 건설 분야에 신사업을 더해 키우면 9조원 안팎인 그룹 매출이 2020년엔 14조원대로 늘어날 것입니다.”
▷경영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공장에 있든, 연구소에 가든 항상 절박합니다. 직원들도 이런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경영은 결국 사람 싸움입니다. 인재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모셔와야 하는데 이걸 좀 늦게 깨달았어요. 앞으로 내 월급보다 더 주고라도 인재를 모셔오려고 합니다.”

● 정몽원 회장은…

△1955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고 졸업 △1978년 한라해운 입사 △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2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석사 △1986년 한라공조 대표 △1989년 만도기계 대표 △1991년 한라건설 대표 △1997년 한라그룹 회장(현) △2001년 (주)한라 대표이사 회장(현)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현) △2017년 만도 대표이사 회장(현)

정리=장창민/박종관 기자 cmjang@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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