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 위한 서비스 풍성한 뮤지컬
분장에 가린 배우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

한 기업에서 특강을 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뮤지컬 ‘캣츠’의 명곡 ‘메모리’를 우리말로 처음 부른 여배우가 옥주현이라 했더니 윤복희가 아니냐는 내용이다. 맞는 것 같지만 틀린 지적이다. 윤복희가 나온 무대는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은 이른바 ‘해적’ 버전인 탓이다. 정식 한국어 공연의 초연 배우는 옥주현과 신영숙이다. 빅뱅의 대성이 럼 텀 터거로 나오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사와 함께해온 캣츠의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팩트들이다.

장장 10개월의 전국투어를 마치고 뮤지컬 캣츠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막을 올렸다. 공연만 하면 흥행은 보장된다고 해서 ‘보험 같은 뮤지컬’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번 내한공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말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고양이 이야기다. 뮤지컬 캣츠는 시집이 원작이다. ‘황무지’로 유명한 T S 엘리엇의 작품에 곡을 붙여 만들었다.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인데, 갖가지 사연을 지니고 있는 고양이들을 통해 인간세상을 묘사하고 풍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발한 발상과 재미있는 시구들은 영국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읽어주는 동시로도 인기가 높다. 물론 무대에서도 이런 묘미를 그대로 살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재미있는 시집으로서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워낙 큰 사랑을 받은 뮤지컬이다 보니 뒷이야기도 적지 않다. 100번 넘게 관람한 관객 중에는 각각의 고양이 이름을 외우고 사연을 입혀 배경을 추론하고 설명하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어 못된 고양이 맥캐비티가 나타나면 유난스럽게 구는 고양이 드미터가 그렇다. 뮤지컬에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어린 시절 맥캐비티가 하도 괴롭혀 그의 존재를 가장 민감하게 눈치챈다는 주장이다. 볼 때마다 특정 고양이를 정해서 그의 움직임과 노래에만 집중해 관극한다는 사람도 많다. 여러 번 봐야 전부 보인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스스로를 ‘집사’라 부르는 마니아 관객들의 얘기다.
한국 공연만의 특징도 있다. 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객석 자리를 ‘젤리클석’이라 부르며 별도로 구분해 놓은 전통이다. 일부러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쓰다듬으려 하면 톡 쏘아보며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2막 첫 소절을 우리말로 노래하는 것도 내한공연만의 팬서비스가 됐다. 세계 각국에서 여러 캣츠를 만났지만 그 나라 말로 노래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 무대는 한국 밖에선 만난 적이 없다.

이번 공연에서 글래머 고양이 그리자벨라 역을 맡은 영국 배우 로라 에밋을 만나 열 달의 추억을 물으니, 늘어놓는 수다가 예사롭지 않다. 동료 배우들과 한국의 산을 오르고 시장을 돌며 음식을 경험한 이야기보따리가 한아름이다. 그중 제일 좋았던 것은 한국 관객이란다. 즐길 준비를 하고 와서 뜨겁게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에 절로 힘이 났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위키드’의 초록마녀, UK투어에서 ‘에비타’의 금발미녀로 나온 그가 “최고”라며 미소 띠고 좋아하는 모습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번 내한무대에서 만나는 반가운 배우가 또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선 굵은 연기와 노래로 인기를 누린 브래드 리틀이다. 캣츠에서는 선지자 고양이 듀터라노미로 나온다. 얼굴 한가득 수염이 달린 특수 분장에 쉽게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공연 중 휴식시간에 그에게 다가서면 따뜻한 포옹도 나눌 수 있다. 알고 보면 더 즐거운 캣츠 최고의 감상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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