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수 부재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 제거
(2) 경영 투명성·수익성 높여 주가 견인
(3) 배당 증대·자사주 매입… 주주환원 확대

"외국인들 포식하던 삼성전자 수익, 더 많은 국민에게 돌려주겠다"

액면가 5000원→100원으로
개인투자자 투자 문턱 낮아져 소액 주주들 지분율 올라갈 듯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2015년 엘리엇과 주총 대립
개인투자자 의결권 지원에 주주 환원정책 보답 의지
코카콜라·MS 등 글로벌 기업도 8~10번씩 액면분할 시행

삼성전자가 31일 ‘50 대 1 액면분할’을 발표하자 주가가 크게 출렁거렸다. 장중 8.71%(21만70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0.2%(5000원) 오른 249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삼성전자 종가를 확인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삼성전자(38,9501,050 -2.63%)가 31일 주식 액면가를 주당 5000원에서 100원으로 분할하는 주식 액면 분할을 전격 결정했다. 삼성전자 주식 1주가 50주로 쪼개지면서 현재 25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 수준으로 내려가 소액주주의 투자 문턱이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이른바 ‘황제주’에서 ‘국민주’로의 선회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많은 수익을 내고 그 과실을 온전히 국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느냐에 대한 조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해 53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세계 최고 기업으로 올라선 여세를 이어가도록 총수 부재에 따른 미래 성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나온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경영투명성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로 보답하는 선순환 구조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희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CFO)은 이날 “지난해 실적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 정책 등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매입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액면분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반도체 슈퍼 호황’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외국인 투자자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을 공격한 이후 삼성전자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주주 환원책을 크게 확대하면서 더 확산됐다. 삼성전자 보통주의 국내 개인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에 그쳤다. 외국인 주주 비율은 53%에 달했다. 또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는 외국인 비중이 80%를 웃돌았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부사장)는 “액면분할 발표로 삼성전자 주식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전유물에서 개인 누구나 살 수 있는 국민주가 됐다”며 “삼성전자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배려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 블룸버그, 닛케이 등 외신도 이날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결정을 긴급 뉴스로 전하며 “더 많은 투자자에게 삼성전자 주주가 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날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결정은 시장의 어떤 투자자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카드로 받아들여졌다. 액면분할은 기업 내재가치에 변화를 주지 않지만 거래 단가를 낮춰 주주를 분산시키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주가 부양에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배당, 주식 매입·소각처럼 별도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삼성전자는 정보기술(IT) 거품으로 주가가 급등하던 2000년 초부터 주주들에게 액면분할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해외 선진기업에 비해 기업가치가 많이 높아졌다고 볼 수 없는 만큼 배당 확대 등과 같은 주주환원보다 투자 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이 훨씬 긴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가 바뀐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옥중 결단’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엘리엇과 삼성물산 합병 주총에서 대립할 당시 의결권을 십시일반 모아 삼성 측 손을 들어준 개인투자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들에게 배당 등으로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또 액면분할은 글로벌 기업은 주주 다양성 확대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주 활용하는 수단이다. 코카콜라(10회)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제너럴일렉트릭(GE), 나이키, 크라이슬러 등은 8~9회씩 시행했다.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사장은 “장기 투자를 원하는 국내외 대형 연기금도 삼성전자가 액면 분할을 통해 유통 주식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된 주식 거래는 주주총회 정관 변경과 주식 교환 절차 등으로 오는 5월 중순부터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앞으로 ‘진정한 국민주’로 거듭나려면 제대로 수익을 낼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면서 지배구조와 리더십의 불확실성은 조기에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 부회장의 거취 문제로 연결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의 뇌물죄 재판은 정치적 영향이 다분하다고 봐야 한다”며 “이달 초 항소심 재판에선 정치색을 빼고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이 내려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도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특히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 ‘삼성전자의 글로벌 성공도 (이 부회장 재판으로 인한) 평판 하락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기사에서 “항소심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삼성전자 해외 사업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애플, 인텔, 소니와 같은 글로벌 경쟁사가 고객에게 이 부회장의 재판을 부각시키면서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대사를 지낸 맥스 보커스 미국 전 상원의원은 지난 16일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에 올린 기고문에서 “한국에서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의 불안정은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을 뜻하며 중국은 어떤 불안정이라도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 잉여현금흐름

free cash flow. 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 중 세금과 영업비용, 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을 의미한다. 철저히 현금 유입과 유출만 따져 돈이 회사에 얼마 남았는지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투자와 연구개발 등 일상적인 기업 활동을 제외하고 기업이 쓸 수 있는 돈이다. 배당과 저축, 인수합병, 자사주 매입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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