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이로운 점 많지만 불면증도 유발
한국인은 카페인 분해하는 능력 떨어져
'불면의 밤' 길다면 커피 줄이는 게 좋아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60대 노교수가 불면증을 호소하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는 수년째 먹고 있는 수면제 처방을 원했지만, 가능하면 약물을 처방하고 싶지 않아 수면위생관리(바람직한 수면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는 치료법)를 시도했다. 그런데 빛과 소음 차단, 적절한 온도와 습도, 취침 전 피해야 할 자극적 활동 등 다른 수면위생관리는 흔쾌히 받아들이던 그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김 박사!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커피만은 포기 못 합니다. 하루에 커피 열 잔을 마셔도 잘 자던 사람이란 말이오!”

손쉽게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약물을 처방받지 못해서인지 또는 수면위생관리가 너무도 뻔한 방법이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끝까지 수면장애가 계속될 수 있으니 커피를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는 권유에 화가 났는지 노교수는 그날 이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밝은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커피가 범인일 줄은 몰랐어! 커피 끊고는 너무 잘 자. 물론 쉽게 피곤해지고 심지어 낮잠도 자서 진짜 노인이 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고마워!”

노교수의 불면증 원인은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는 아니다. 몸에 이로운 다양한 항산화물질과 함께 존재하는 카페인이 문제였다. 카페인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자극해서 기운이 나게 하고 피로를 감소시킨다. 또 집중력 등 인지 기능을 활성화해 업무 효율을 높인다(고백하는데 이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커피의 힘을 빌리는 중이다).

하지만 역효과도 있다. 제일 흔한 부작용은 불면증이다. 잠들기 어렵거나 중간에 자꾸 깬다. 불안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심장이 방망이질치고 호흡이 가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뇨작용도 있어서 빈번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려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카페인은 커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음료는 물론이고 자양강장 음료에도 가득하다. 녹차 홍차 보이차 등에도 카페인이 적지 않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카페인 함량이 적은 커피라는 것을 모르고 마시기도 한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 우유나 초콜릿 우유에도 하루 권장량 이상의 카페인이 들어 있어서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커피는 누구나 즐겨 마시는 기호식품이 된 지 오래다. 얼마 전 한 커피전문점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아메리카노 한 종류만으로도 무려 8369만 잔 넘게 팔아, 4000만 국민이 한 잔 반 정도씩 마셨다고 발표했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합치면 소비량은 더 늘어난다.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국민 1인당 377잔 정도를 마셨다. 커피는 이제 명실상부한 국민음료가 된 셈이다.

그런데 커피라는 음료는 외래종(外來種)이다. 6세기 에티오피아에서 양치기 소년이 어떤 열매를 따 먹은 양들이 쉽게 흥분하는 것을 발견하고 커피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이슬람 문화권과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졌다. 지역 농수산물이 몸에 이로운 이유는 보관이나 운송을 위해 해로운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것 외에 오랜 시간 우리 몸에 익숙해졌다는 데도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카페인을 분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분해 능력이 떨어지면 부작용이 늘기 쉽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고종황제 시절인 1895년 정도라고 하니, 오래전부터 즐겨온 서양의 커피 역사와 비교하면 유전적인 차이가 생길 만도 하다.

커피가 나쁜 음료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불면증의 원인으로 커피만을 지목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면증이 있다거나 심신이 불안하다면 얼마 동안만이라도 커피를 끊어보기를 권한다. 정말 끊기가 힘들다면 오전 중에만 마시거나 커피 양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차피 커피는 기호식품(嗜好食品)이다. 기호는 바꾸거나 참아볼 수 있지만 불면의 밤은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가.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