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 가능할까

"가상화폐 규제해야" vs "블록체인 육성에 필요" 충돌
분리 규제는 "자동차 주행 막고 엔진 개발한다는 발상" 지적도
가상화폐도 '퀴뇨의 증기자동차' 같은 단계…활용성 높아질 것

이영환 <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28일 시작된 청원은 지난 27일 22만8296명이 참여하며 마감해 이제 정부의 답변만 남겨놓고 있다. 비트코인의 투기적 거래가 사회 문제로 부상하면서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 또는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암호화폐 시장은 ‘돈벼락’ 꿈만 꾸게 하는 투기판일 뿐이다”는 기성세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암호화폐를 젊은이들을 위해(危害)하는 위험한 장난감이라면서 규제해야 한다는 말은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위장된 논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사이버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신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며 진화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핵심 기술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2016년 201억원 규모이던 국내 블록체인 시장이 2022년 3562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블록체인 시장이 2022년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고 거래자의 신분도 드러나지 않는 ‘분산원장’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말 그대로 ‘블록’을 ‘체인’으로 연결한 구조다. 모든 거래내역은 시간대별로 정렬해 블록에 저장되고 각각의 블록은 체인으로 이어진다. 처음 생성된 블록부터 현재의 블록까지 한 번 만들어진 블록은 변경, 삭제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중앙통제식이 아니라 분산 구조로 참여자 간 신뢰 프로세스를 재설계함으로써 ‘신뢰성’을 극대화한 기술인 것이다. 융·복합과 연결을 화두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지능정보사회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이 블록체인을 형성·유지하기 위해 채굴자(miner)에게 주는 인센티브다. 채굴자는 이를 판매해 보상받는다.

블록체인 유지에 필요한 인센티브

암호화폐 투기를 막아야 한다는 이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분리를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시키고, 암호화폐 거래는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따로 떼어내 육성하고 규제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의 분리는 자동차 주행을 금지하고 안전하고 잠재성이 큰 엔진산업만 따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란 인센티브가 없으면 민간이 참여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럼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세금으로 육성할 수밖에 없다. 중앙통제 방식이다. ‘중앙의 통제 없이 거래자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분산원장 기술’이란 전제가 허물어진다.

생각해볼 문제는 또 있다. “암호화폐는 실제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을까”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암호화폐가 실제 거래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없으므로 ‘사기’라고까지 단언한다. 그러나 이는 암호화폐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퀴뇨의 증기자동차’를 생각해보자. 퀴뇨의 증기자동차는 무거운 대포를 운반하기 위해 18세기 프랑스 포병장교 퀴뇨가 처음 개발했다. 이 증기자동차는 석탄이나 목탄을 땔 때 발생하는 수증기 압력을 동력으로 사용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경천동지할 발명이었다. 그러나 여러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이 증기자동차는 커다란 가마솥 형태의 보일러 통을 달고 있었고, 보일러의 물을 끓여야 해 15분마다 물을 채워 넣어야 했다. 주행 능력도 시속 5㎞밖에 안 됐다. 치명적인 것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이 때문에 언덕에서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벽에 부딪혀 화재를 내고 만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교통사고 기록이다.
사이버공간에 신뢰시스템 구축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퀴뇨의 증기기관차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퀴뇨의 증기자동차가 소나 말이 끄는 수레가 아닌 쇳덩이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가명 또는 익명의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인류 최초로 만들어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사이버공간은 제3자 개입이 없다면 구성원 간에 비우호적이고 비협력적이며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공간에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제3자 개입 없이 거래가 가능하도록 신뢰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퀴뇨의 증기자동차처럼 비트코인에도 다수의 치명적 단점이 존재한다. 비트코인의 수가 2100만 개에 불과하고, 블록 형성에 10분이 걸리고, 거래 최대 처리 속도가 초당 7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등이다. 퀴뇨의 증기자동차가 대포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쓸모는 없었던 것처럼 비트코인은 탈중앙 P2P(개인 간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거래 수단으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비트코인은 신뢰시스템 구축에 성공한 까닭에 그나마 ‘가치 저장’ 수단으로는 사용되고 있다.

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수천 종류의 암호화폐를 설계하고 있다. 예컨대 ‘라이트코인’ 개발팀은 블록체인의 블록이 10분마다 만들어지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보고 이를 2분30초로 줄였다. 또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한 교수는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익명성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고 이를 반영한 암호화폐 ‘지캐시(zCash)’를 개발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암호화폐 중 유통되고 있는 것은 1500개 정도다.

이들 중 주목되는 암호화폐는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에 ‘신뢰’만 있지 ‘계약시스템’은 없어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봤다. 사실상 우리 사회의 모든 활동은 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더리움을 개발할 당시 19세였던 비탈릭 부테린은 이 세상의 모든 계약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성할 수 있다고 보고 비트코인식 블록체인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더리움팀은 이를 ‘블록체인 2.0’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더리움 역시 여러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예컨대 이더리움의 거래 속도가 초당 10여 개 수준이라든지, 익명성이 제공되지 않는다든지, 변동성이 심하다든지 하는 문제다.

일상에서 통용되게 진화할 것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 지금까지 설계된 암호화폐에 부족했던 부분이 ‘일상성(daily usability)’의 문제다. 사이버상에서 개인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1.0 기술로 구축한 ‘신뢰’가 필요하고, 이더리움이 블록체인 2.0 기술로 보여준 ‘스마트계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블록체인 기술을 일상에서 활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이들이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자동차 엔진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지만 사실상 자동차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인 것과 같다. 일상성이 없는 블록체인은 ‘타임스탬프’만 제공하는 쓸모없고 효율성 떨어지는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다. 누군가는 이 일상성의 문제를 풀 것이고 암호화폐 활용에 성공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영환 <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 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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