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규제의 역설

당첨되면 수억원 웃돈 확실시
가점 높은 통장 불법 거래
무주택자 통장 매입 뒤 되팔거나
당첨 후 웃돈 붙여 분양권 매도
정부 "특사경 동원해 단속할 것"

지난해 수도권의 한 택지지구에서 형성된 분양권 야시장 모습. 당첨자 발표일 0시에 형성되는 야시장에선 불법 거래된 청약통장을 이용해 당첨된 분양권 등이 거래된다. /한경DB

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의 불법 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첨이 확실한 통장의 불법 거래 가격도 최고 1억원까지 치솟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서울과 경기 인기 주거지역 분양권이 사실상 로또화된 까닭이다. 통장을 거래하는 브로커들은 사들인 통장을 그대로 되팔거나 당첨된 뒤 분양권에 웃돈을 붙여 매도하고 있다.

◆청약통장 불법 거래 여전

2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관악·동작구 등 주택가 전봇대에선 ‘청약통장 거래’를 알선하는 전단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 인터넷 카페 등에서도 불법 거래를 유혹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청약통장 브로커들은 “최저 500만원에서 최고 1억원을 받고 청약통장을 팔 수 있다”며 청약통장 보유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가점은 높지만 분양대금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이 주로 통장을 팔고 있다.

관악구에서 발견한 전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브로커는 나이와 청약통장 가입연수를 물었다. 브로커 A씨는 “통장 가입연수가 5년 이상이면 기존 입금금액에 500만~1000만원을 얹어줄 수 있다”며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이 늘어남에 따라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는 통장값을 더 쳐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브로커 B씨는 ‘만 35세, 부양가족 다섯 명, 청약통장 가입기간 10년’ 등 가점 항목을 제시하자 즉시 청약 가점을 계산해 거래가격을 제시했다. 그는 “500만~800만원까지 거래 가능하다”며 “요즘은 단속이 심해져 아무거나 사지는 않지만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만 알고 조용히 진행하면 절대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브로커는 또 “매달 10만원씩 꾸준히 오래 넣은 통장일수록 인기가 좋다”며 “만약 45세 이상에 무주택자이면서 통장에 입금돼 있는 금액이 많다면 가입기간에 따라 최고 1억원까지도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대다수 청약통장 매매는 직거래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카페나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통장과 주민등록등본 등 필요한 서류를 주고받는다. 통장 입금액과 웃돈은 서류 교환 시 바로 받을 수 있다. 이후 해당 통장으로 당첨되면 ‘복등기’를 통해 등기를 이전한다. 아파트 입주 전 매매 계약을 한 뒤 입주 직후 최초 계약자(매도자)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 뒤 다시 매수자 앞으로 등기를 바꾸는 것이다. 거래 자체가 불법이라 법적 효력은 없지만 당사자들의 신고만 없다면 적발이 불가능하다는 게 브로커들의 설명이다.

최근 서울에서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의 당첨 가점 커트라인은 60~70점대에서 형성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투기과열지구에서 가점제 비중을 높임에 따라 가점이 높은 통장값은 더 뛰고 있다. 전용 85㎡ 이하 아파트는 100%, 전용 85㎡ 초과 아파트는 절반을 가점제로 공급한다.

◆단속 강화 예고

주택법에 따르면 청약통장 불법 전매를 알선하거나 매매한 당사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공인중개사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 수 있다. 통장 거래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첨돼도 계약은 무효다. 알선자나 거래 당사자 모두 10년 이내 입주자 자격을 제한한다. 단속은 쉽지 않다.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청약통장 브로커 K씨는 “조용히 진행하면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국토부는 특별사법경찰제도를 통해 분양권 불법 전매·청약통장 거래 등 부동산시장 불법 행위의 단속과 조사 강도를 높일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긴급체포와 영장집행, 사건송치 등이 가능해져 단속 실효성이 올라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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