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1초가 중요한데…
이영학 사건 신고 받은 경찰
출동 안하고 48시간 지나 수사
고(故) 고준희 양은 당일 즉시 수사
"매뉴얼 있어도 현장선 오락가락"

배회감지기 거부하는 가족들
GPS로 위치 확인 가능한데
절차 번거롭고 대여료 부담
"가족의 관심이 가정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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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6시33분 전남 강진군 마량면 한 농경지 수로. 치매를 앓던 박모씨(79)가 2㎝가량 두께의 눈에 덮인 채 차갑게 굳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동사였다. 전날 가족들의 실종신고 이후 경찰과 소방관은 물론 마을 주민까지 합심해 나섰지만 코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함박눈 때문에 수색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경찰이 수색을 포기하려던 무렵 박씨가 자주 한 혼잣말이 순간 아들 김모씨(56)의 뇌리를 스쳤다. 박씨가 발견된 장소는 그가 평소 그리워하던 친언니 무덤과 불과 10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치매환자는 밤에 자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흔적을 찾기 어려운 만큼 작은 단서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5년 새 30% 급증한 치매환자 실종신고

현행 실종아동법(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보호 대상인 치매환자나 지적장애인, 어린이가 실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들의 실종 사건은 지난해 3만8789건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5년 내리 연평균 3% 감소한 추세가 갑자기 반전된 것은 치매환자 실종 사건이 2013년 7983건에서 지난해 1만308건으로 30% 가까이 급증한 탓이 컸다.

실종 사건이 늘고 있지만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인프라는 열악하다. 특히 지방 농어촌 지역엔 폐쇄회로TV(CCTV)가 많지 않아 수사관들의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진경찰서 관계자는 “가족 진술이나 주변 탐문 등으로 실종자의 방향을 가늠해 수색한다”며 “대다수 치매환자는 골목으로 가지 않고 큰길을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간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있는 CCTV 대부분도 사설이라 협조에 응하지 않거나 연락 자체가 안 돼 일분일초가 급한 실종 수사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매뉴얼조차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종아동업무 안전매뉴얼(여성청소년과)과 실종사건 수사매뉴얼(형사과 강력팀)이 있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경찰의 허술한 수사로 논란이 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에서도 피해자 A양은 A양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한 지 24시간 뒤 이씨에 의해 살해됐다. 경찰은 실종신고를 받고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고, 실종신고가 있은 지 48시간이 지나서야 탐문수사를 시작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실종신고 후 이틀(48시간)이 지나도 발견되지 않으면 장기실종아동으로 분류하는 경찰이 사실상 A양을 죽도록 내버려뒀다는 지적이다. 장기실종아동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대부분 매년 누적되고 A양처럼 영영 찾지 못하게 되는 사례가 다반사다.

이영학 사건과 달리 지난달 고준희 양(5) 실종사건에서 경찰은 실종신고를 받은 4일부터 수색과 수사를 병행했다. 경찰은 1주일 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했고, 3주 만에 ‘(고양의) 시신을 군산 야산에 유기했다’는 고양 친부(36)의 자백을 받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존 규칙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며 “일선서나 지방청의 노하우를 모아 새로운 매뉴얼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회감지기 권유해도…

경찰은 수색에 속도를 내기 위해 2012년부터 실종 이력이 있는 치매환자및 아동 등에게 배회감지기를 빌려주고 있다. 비용은 월 3400원이다. 목걸이와 손목시계형 두 종류가 있다.

배회감지기를 부착하면 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부착된 사람의 위치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미리 설정해둔 ‘안심 권역’을 벗어나면 보호자에게 자동으로 알림이 간다. 이와 함께 지문과 얼굴 사진 등 인적사항을 미리 등록해 놓고 유관기관 간 공유하는 사전 지문등록제도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경기 광명경찰서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가 사라졌다”는 실종 신고가 들어왔다. 사라진 70대 아내 김씨는 과거에도 실종된 이력이 있었다. 미리 지문과 얼굴 사진을 등록해둔 덕분에 경찰은 곧바로 김씨의 인상착의를 각 기관에 전파할 수 있었다. 김씨는 실종 신고를 접수한 지 단 25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치매환자의 지문 사전 등록률은 10.4%에 그치고 있다. 강원 원주시 반곡동에선 치매를 앓던 장모씨(62)가 지난달 26일 실종됐다. 원주경찰서 타격대,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대 등 92명이 헬기까지 띄워 꼬박 나흘 동안 수색한 끝에 그를 발견한 곳은 집에서 불과 10㎞ 떨어진 도로 위. 수색을 마무리한 경찰이 지문 사전등록과 배회감지기 착용을 권유했지만 장씨 보호자가 모두 거부했다. 절차가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가들은 평소 환자의 행동양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가족 습관이 실종 수사의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15년 실종 치매환자를 발견한 9046건 가운데 경찰 수사로 해결한 건 전체의 59%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건에서는 가족이나 이웃이 평소 행동습관을 토대로 직접 실종자를 발견했다.

경찰청 실종수사지도팀장 출신인 이건수 배재대 교수는 “치매환자가 실종되면 주거지 주변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며 “집 주변에 CCTV를 설치하는 등 가족들의 노력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영국 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치매환자를 실종 24시간 안에 찾지 못하면 사망할 확률은 50%를 웃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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