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변화의 동력 이끌게끔 기반 다지고
수단으로서의 재건축·재개발도 포용하며
추진력 잃지 말되 멀리 보고 신중히 가야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지난 칼럼에서 도시재생의 비전을 들여다봤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는 전국 68곳의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앞으로 매년 최대 110개 지역을 더해 임기 5년 동안 한 해 100곳씩 총 500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계획이라고 한다.

연간 10조원씩 총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그랜드 비전’이다. 이래저래 논란이 많았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4년여에 걸쳐 20조원가량을 썼으니 그 두 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벌써 전국이 떠들썩한 것도, 사업 지역으로 선정되거나 거론되는 지역에서 부동산 매물이 흔적을 감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예산이 있는 곳에 표가 있는 법이니 일찌감치 막을 올린 6월 지방선거 레이스에서 도시재생이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다.

하나하나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동네들이 정체성을 지키며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활력을 새로이 찾는다는 도시재생의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에 대한 반응이 대체로 기대 반 우려 반인 것은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 싶다. 각 지역에서 사업을 이끌어야 할 지방자치단체부터 자신의 소중한 터전이 사업 대상에 포함된 지역 주민에 이르기까지 각자에게 맞는 도시재생 해법은 어떤 것일지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제언을 더해본다.

첫째, 도시재생(再生)은 필히 도시자생(自生)이어야 한다. 방향 설정과 계획 수립부터 주민의 의사와 참여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공공예산 투입을 감안해 지자체 주도 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변화의 동력을 스스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도시재생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중 핵심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도시재생에 ‘뉴딜’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주도와 개입만 보며 천지개벽을 바라는 기대심리를 부풀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벌써 두세 배씩 뛰기 시작한다는 것은 도시재생을 ‘나라가 돈을 대는 재개발사업’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방증한다. 뉴딜은 대공황의 덫에 갇힌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수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정부 재정을 쏟아부은 것으로, 말하자면 심정지 위기의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인공호흡 같은 것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도시재생은 체질을 바꿔 몸이 스스로 건강을 찾게 하는 한약 같은 셈인데, 자칫 뉴딜이라는 이름 탓에 그 취지와 구조, 효과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부를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부터 실제 사업 내용까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둘째, 도시재생은 목적의 가치이지 수단적 처방이 아니다. 도시재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재건축재개발도 충분히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쳐 쓰기에는 너무 낡고 위험한 주택이나 보존의 의미가 불분명한 건물은 과감히 다시 짓는 것이 맞을 때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각각의 경우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무게를 꼼꼼히 견줘 보고, 그 가치 판단의 저울이 기우는 방향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와 충분한 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보존형 도시재생을 선택할 경우 그로 인해 양보해야 하는 편익에 대해서도 확실히 인지해야 나중에 ‘그 돈 다 어디다 썼냐’는 불만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은 대통령이나 지자체장의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도시재생은 기본적인 정비사업 프로그램이 완료되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기간 단절됐던 이웃 사이를 다시 잇고, 그들로 하여금 자생적인 공동체를 이뤄 지역 발전의 새로운 활력을 찾도록 돕는 데에는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은 마중물이나 불쏘시개 같은 것으로, 각 지역 커뮤니티의 장기적인 자생을 위해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투입하는 에너지다. 마중물만 넣고 펌프질은 안 하면서 샘물이 콸콸 솟구치기를 바라거나, 불쏘시개에 붙은 불로 급히 몸을 녹이려 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추진력과 속도감을 잃지 말되 찬찬히 신중하게 가야 멀리 간다.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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