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모루아 《미국사》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룩한 위대한 성과를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미합중국의 발전은 어느 인류사회의 발전보다 굉장히 신속했다. 북아메리카에는 지구상 최대 강국이 불과 한 세기 반 만에 들어섰다.”

“미합중국은 초창기부터 필요에 따라 적합한 자유를 창조했고, 건국의 아버지들은 150년 동안 혁명을 겪지 않고 수정해나갈 수 있는 위대한 헌법을 제정했다. (중략) 미국은 성장의 포화점에 도달한 나라가 아니라, 꿈과 활기에 가득 차 있는 젊은 나라다.”

프랑스 역사가이자 전기작가인 앙드레 모루아(1885~1967)의 《미국사》는 초강대국 미국의 역사를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한 명저다.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한 나라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미국사》 집필을 시작한 모루아는 “한 국가가 놀랄 만큼 급속히 발전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 국민이 숭고한 이상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밝혀보려는 의욕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서문에 썼다. 그는 이 책에 앞서 《영국사》 《프랑스사》도 펴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험난한 생활, 인디언과의 투쟁, 드넓은 토지, 상호 부조의 필요성 등이 정착민의 성향마저 바꿔놓았다. 관용을 베풀고 독립적이며, 억센 기질과 일에 대한 열정 및 체력의 차이 외에는 일체의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는 개척자 정신이 등장한 것이다.”

모루아는 《미국사》에서 1607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향한 143명의 이민자가 건설한 영국 식민지 제임스타운이 초강대국 미국으로 발전한 원동력으로 자유주의와 개척자 정신을 꼽았다. 그는 “변경의 미개척지에서 땅을 일구는 사람들은 자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까지 영국에서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모루아는 미국인의 이 같은 개척자 정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인은 결국 변방의 끝까지 도달했지만, 변경으로 진출하던 개척자 정신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신은 벽에 부딪힌 반동으로 동부 지역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형식의 개척자를 창조했다. 즉 대은행가와 대기업가가 개척자의 진취적이고 과감한 개인주의를 계승해 끈기와 인내를 보여줬다.”
미국의 자유주의 정신이 유럽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모루아는 “구세계(유럽)에서의 자유란 개인이 기득권층으로부터 쟁취한 전리품이었지만, 신세계(미국)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개인에게서 그 권리를 쟁취하려 했다”고 봤다. 신대륙 정착민은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의 자유를 누렸고, 자유주의 정신이 그만큼 강했다는 얘기다.

미국의 발전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거쳐 연방 탈퇴 문제와 노예제 시비 등이 곪아 터진 남북전쟁을 치렀고 19세기 후반에는 경제 불황을 겪은 가운데 신·구 이민자 간 대립이 심화됐다. 남부와 동부 유럽에서 밀려든 새 이민자들은 더 이상 자유 농토를 얻지 못해 도시에 정착하면서 기존 노동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산업 독점을 방지하고 경쟁을 촉진하려는 반트러스트법을 둘러싼 갈등도 불거졌다.

모루아는 미국이 뛰어난 법·제도와 정치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 같은 사회 갈등을 조금씩 극복하며 발전해왔다고 했다. 저자는 남북전쟁 때 남군을 이끈 로버트 리 장군과 북군을 지휘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의 종전 회담을 소개하며 이 같은 지도자들이 미국 통합을 이끈 주역이었다고 설명했다.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도 강점

“두 사람은 똑같이 괴로움을 이겨내야 했다. 리는 항복해야 하는 괴로움을, 그랜트는 적군의 비통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을 겪었다. 휴전 조건은 관대했다. 남군 병사들은 선서한 뒤 석방돼 귀가했으며 말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 리 장군은 부하들이 굶주리고 있음을 털어놓으며 식량 보급을 요청했고, 그랜트는 2만5000명분의 군량을 보냈다. 두 장군이 회담 내내 변함 없이 보내준 위엄, 인정, 순박함은 사람들을 탄복하게 했다.”

《미국사》에는 조지 워싱턴(초대), 존 애덤스(2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등 대통령을 포함한 숱한 정치 지도자 얘기가 흥미롭게 담겨 있다.

모루아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고히 보장한 미국의 헌법 정신도 주목했다. 그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미합중국 헌법과 법률의 우수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졌다”며 “헌법은 국민의 주권을 보호하는 한편 강력하고 영속성 있는 행정권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모루아의 말처럼 미국은 단기간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나라다. 70년 전 프랑스 작가의 눈으로 본 초강대국 미국 발전 역사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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