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중국, 질주하는 선전

선전 빌딩숲 드론 곡예비행
서울은 대부분 금지구역
"중국 창업가들이 부럽다"

선전 기업인들 "규제로 애먹은 적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면 옳은 일이겠느냐"

선전=장진모 정치부장 jang@hankyung.com
세계 상업용 드론(무인항공기)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DJI.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접수’한 데 이어 우버의 안방인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디디추싱. 온라인 핀테크(금융기술) 시장의 글로벌 1위인 앤트파이낸셜. 중국의 혁신성장을 상징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3인방이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선전 창업가들은 느낄 수 없는, 한국 창업가들이 유독 절실하게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창업 초기에 정부 규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한국경제신문 산·학·언(産·學·言) 특별취재단이 찾은 중국 선전의 전자상가 화창베이. 초고속 드론이 고층 빌딩 사이로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다. “여긴 비행금지구역이 따로 없나 보네요.” 전파법 항공법 등으로 서울 곳곳이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여 있는 한국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DJI의 선전 본사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규제로 어려움을 겪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6월에야 드론 소유등록제를 시행했다.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이 2014년 차량호출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를 본격화하자 택시기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만성적인 택시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합법화의 길을 열어줬다. 우버가 한국에서 불법 논란에 휘말린 끝에 철수한 것과 대조적이다.

온라인에서 개인 간(P2P) 대출을 중개해주는 앤트파이낸셜도 사업 초기 은행권의 반발에 직면했지만 중국 정부는 ‘기득권’ 편에 서지 않고 P2P 손을 들어줬다. 신산업이 주목받기만 하면 정부 각 부처에서 “이건 우리 영역”이라며 앞다퉈 관련 규정과 법률을 만드는 한국의 풍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특별취재단에 합류한 이효진 8퍼센트(P2P업체) 대표는 “정부의 온갖 규제에 신경 쓰지 않고 서비스와 고객에만 집중할 수 있는 중국의 창업가들이 부러울 뿐”이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면 옳은 일이겠느냐”고 정부 규제 시스템에 직격탄을 날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말은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선전의 창업생태계가 미국 실리콘밸리를 뺨칠 정도로 성숙한 데는 창업과 신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됐다.

중국 경제정책을 지휘하는 리커창 총리의 일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리 총리는 작년 6월 국무원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기존 사업자와 스타트업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 누가 시대 변화와 소비자 니즈를 충족할지는 시장이 판단한다. 공무원이 관행과 규정을 앞세워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산업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더라도 ‘선(先)허용·후(後)보완’ 형태의 네거티브 시스템을 적용하라는 원칙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한국 정부도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규제혁신토론회를 열고 신산업에 대해 ‘선허용-후규제’ 방식의 규제혁파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시장은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앞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를,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야 한다고 외쳤지만 지난 10년간 규제 체감도는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현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낡은 규제 1개를 철폐하면 새 규제가 2~3개씩 생기는 악순환만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1000여 건 가운데 규제법안이 700여 건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기존 업계와 이익단체의 로비를 받아 발의한 법안도 있지만 업계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각 부처가 ‘의원 입법’이란 우회로를 통해 슬쩍슬쩍 밀어넣는 규제법안도 부지기수다. 창업에 뛰어든 패기 있는 혁신기업가들이 엉뚱하게 공무원과 씨름해야 하는 규제지옥에서 창업생태계 활성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몇 년 전 위챗이 처음 생겼을 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일단 지켜본 뒤 규범화하기로 했다. 그때 만약 옛날 방식으로 규제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위챗은 없었을 것”이라는 리 총리의 발언은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경 산·학·언 특별 취재단

◆스타트업계=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류진 우아한형제들 이사

◆서울대=박희재·차석원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이광근 컴퓨터공학부 교수

◆한국경제신문=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장진모 정치부장, 박준동 금융부장, 장규호 문화부장, 강동균 베이징 특파원, 김동윤·노경목·이승우·김범준 기자

선전=장진모 정치부장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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