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1년 만에 33명→9명으로 축소…교섭단체 지위 상실
개혁보수-다당제 실험 의미…원내서 유의미한 변수는 못돼

바른정당이 오는 24일로 창당 1주년을 맞는다.

유승민 대표가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조했던 표현처럼 바른정당의 지난 1년은 '가보지 않은 길'로 축약되는 정치적 실험 그 자체였다.

바른정당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출범했다.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두고 '친박'(친박근혜)계와 대립한 '비박'(비박근혜)계가 집단으로 탈당해 지난해 1월 24일 창당했다.

막 돛을 올린 바른정당에 닥친 첫 번째 시련의 파도는 5월 대선이었다.

당시 당은 보수진영의 유일한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으나 반 전 총장의 갑작스러운 불출마로 계획이 좌절됐고, 결국 유 대표를 대선후보로 세웠다.

그러나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소속 의원 13명이 보수 대통합과 좌파정부 출범 저지를 명목으로 집단 탈당해 한국당에 복당하면서 의석수는 33명에서 교섭단체 마지노선인 2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두 번째 위기였다.

창당 100일도 되지 않아 사실상 당이 쪼개지는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유 대표는 6.8%의 득표율로 대선 레이스를 완주했다.

이후 당내에서 보수 대통합을 외치는 '통합파'와 바른정당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자강파' 간의 대립이 본격화했고,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6·26 전당대회에서 '친유'(친유승민)계 자강론자였던 이혜훈 대표가 당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당시 이 대표가 선출된 지 74일 만에 수천만 원대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면서 낙마했고, 지도부 공백 속에 통합파와 자강파 간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다가 지난해 11월 공동 창업주 격인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통합파 9명이 집단 탈당하는 3차 위기를 맞았다.

결국, 의원 수가 11명으로 줄어들면서 교섭단체의 지위가 무너졌고, 그 직후인 '11·13 전당대회'에서 유 대표가 당권을 잡으며 대선 패배 후 6개월 만에 다시 당의 전면에 나섰다.

유승민 체제 출범 이후에도 '보수통합'이라는 이슈는 바른정당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찬반에 대한 전(全)당원투표를 전격 제안하는 등 통합의 한 당사자인 국민의당이 통합 드라이브를 세게 걸면서 논의의 중심은 보수통합에서 중도통합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그 과정에서 지역구 지지자들로부터 '한국당 복당' 압박을 받아 온 김세연·박인숙 의원이 추가로 탈당해 의석수는 한 자릿수인 9명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정치적 무게감이 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한국당행(行)을 결정하면서 바른정당은 더욱 위축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21일 현재까지 거취를 고민 중인 상태다.
유 대표와 안 대표가 지난 18일 두 손을 맞잡고 공식 선언한 '통합개혁신당' 창당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바른정당이라는 당명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바른정당은 주요 현안에서 개혁보수의 창당 정신을 구현하려 노력했고, 또 국민의당과 함께 다당제 구도를 구축해 다양한 여론을 의정활동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주요 국면마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큰 탓에 수차례 분당 위기를 겪었고, '정치는 수 싸움'이라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계속 줄어드는 의석수로 원내에서 유의미한 '변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