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 심한 '독이 든 성배'
정치권·정부 눈치봐야 하고
하반기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업경영 개입했다 화(禍) 당할수도

거론된 후보자들 잇따라 손사래
지원자 없어 이사추천위 못 열어

600조 국민 노후자금 운용 방치
과도한 책임 안 지게 정비 시급

6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려야 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6개월째 비어 있다.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최장 기간 공석이다. 과거 CIO 자리가 빌 때마다 자천타천 수십 명의 지원자가 손을 들었지만 이번엔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본시장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나서려는 사람이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임기 만료를 6개월 앞두고 인사 책임 등을 사유로 사표를 낸 뒤 6개월째 새 본부장을 뽑지 못하고 있다.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 임기 중 하차한 본부장은 여럿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두진 않았다. 과거엔 공석이 된 지 2개월 전후로 새 본부장을 뽑았다. 수백조원의 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외 주식·채권·대체투자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이사추천위원회를 통한 공모→심사→추천을 거쳐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한다. 국민연금은 그러나 아직 기금이사추천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통 공모 전 본부장 자리에 관심 있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의사 타진 절차를 거치는데, 이번엔 나서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아무나 뽑는다면 몰라도 능력 있는 사람들은 삼고초려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운용 책임 너무 커져”

시장에선 정부가 국민연금 운용과 관련해 너무 많은 간섭을 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올해 하반기 기관투자가의 주주활동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주주대표소송까지 제기할 것을 요구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홍완선 전 본부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찬성했다는 이유로 구속까지 됐는데, 기업 경영에 자칫 개입했다가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운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줄곧 “제도와 기금이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밝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역대 기금운용본부장 중 이사장과 갈등을 벌이다 물러난 경우가 적지 않다”며 “본부장이 되더라도 독립적으로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임기가 2년(1년 연임 가능)에 불과한 데다 퇴직 후 공직자 취업제한 규제를 받는다는 점, 연봉이 3억원 수준으로 업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 등도 자리의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공백 장기화 땐 기금운용 차질”

기금운용본부장 공석이 장기화되면 투자 의사결정에 차질이 생겨 운용의 안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자칫 운용 수익률이라도 떨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권한에 따른 책임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책임까지 지지 않도록 운용 관련 거버넌스를 정비해 유능한 인재가 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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