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개의 산

맨부커상과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한강은 지난해 말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후보에 든 작품은 《희랍어 시간》. 그의 장편소설이 프랑스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메디치상 후보에 올라 주목받았지만 결국 이 상 외국문학 부문은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에 돌아갔다. 주인공은 파올로 코녜티의 장편소설 《여덟개의 산》(현대문학)이다. 2004년 데뷔해 줄곧 단편소설을 쓰다가 처음 내놓은 장편인데, 순식간에 38개국에 출간 계약됐다.

이 책은 이탈리아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자연 소설이자 가족과의 화해를 그린 가족 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배경이자 가장 중요한 소재는 ‘산’이다. 등장인물보다 공간적 배경인 산이 주인공이라는 수식어와 더 어울릴 정도다. 등장인물들에게 산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주인공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유년 시절을 함께 산에서 보낸 아이들이다. 그러나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광적일 정도로 산을 정복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 정상에 오르고 나면 늘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면 브루노의 아버지에게 산이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산은 주인공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공간이다. 부자간의 정을 회복하는 역할도 한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는 게 지긋지긋한 피에트로는 성인이 되면서 산을 멀리하게 된다. 브루노 역시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이별은 부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는다. 서로 화해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산을 다시 찾은 피에트로는 브루노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남긴 땅에 새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을 짓는 동안 그는 아버지가 다니던 산봉우리를 오르며 아버지와 자신이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운전하는 동안 산비탈을 연구하거나 날씨를 확인하려 할 때 핸들에 두 손을 얹어놓고 관자놀이를 그 위에 대다가 흠칫 놀란다. 아버지가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자신을 보고서다. 항상 산을 타는 데만 온 정신이 쏠려있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사랑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피에트로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단순히 땅만이 아니었다. 산에 대한 열정, 암벽과 눈, 소나무를 즐기는 방식까지 모두 아버지의 유산이었다.

이탈리아 발다오스타 해발 2000m에 작은 집을 짓고 혼자 살아가며 종이와 펜을 이용해 원고를 집필하는 코녜티의 성정이 등장인물에 그대로 녹아있는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계절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자연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최정윤 옮김, 현대문학, 312쪽, 1만35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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