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에서 빙속 전향 6개월 만에 릴레함메르 올림픽 출전
토리노 이후 12년 만에 다섯 번째 올림픽 출전 도전

"실패할 게 두려웠으면 애초에 빙판에 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를 가리기 위해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열리고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발전에선 유독 눈에 띄는 선수 한 명이 있다.

선수라기보다는 감독이나 선수 가족에 가까워 보이는 이 선수는 47살의 KC 부티엣이다.

동계올림픽 무대를 네 번이나 밟은 백전노장인 그는 평창행 티켓을 위해 스케이터로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4일(한국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와 미국올림픽위원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부티엣은 올림픽 매스스타트 출전권을 얻기 위해 평균연령 23세의 그야말로 자식뻘인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부티엣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06년 토리노올림픽까지 네 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5,000m 5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일 뿐 올림픽 메달이 없지만 그는 미국 빙상계에서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그는 20대 초반이던 1993년 비시즌 기간 훈련할 곳을 찾아 연고도 없는 밀워키에 무작정 갔다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대표 선발전에 뽑혀 릴레함메르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수많은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들이 빙판에 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쇼트트랙의 안톤 오노와 스피드스케이팅 조이 맨티아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그의 전철을 밟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부티엣이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빙속 전향 물결을 이끈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표현했고 그의 옛 동료이자 코치인 터커 프레데릭스는 그를 '레전드'로 칭했다.

당시 전향을 결심하며 "내 몸이 말을 듣는 한, 스피드스케이팅이 나를 내치지 않는 한" 아주 오래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부티엣은 이미 선수로서 '고령'이던 35세에 나간 2006년 토리노올림픽 이후 반쯤 은퇴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며 사이클화 만드는 사업도 시작했다.

그러나 선수 본능을 잠재울 수 없었던 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선발전 등 몇 차례 대회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훈련을 재개한 것은 40대를 넘긴 2014년이었다.

체력 못지않게 전략과 노련함이 필요한 매스스타트 종목이 신설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출생연도인 번호 70번을 부여받고 다시 빙판에 선 부티엣은 201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46세 224일의 나이로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거머쥐며 최고령 월드컵 메달리스트가 됐다.

영광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은퇴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5살 아들, 2살 딸을 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망설이던 그에게 아내는 "거의 다 왔다.

1년밖에 안 남았다"며 평창행 도전을 독려했고, 가족의 격려 속에 그는 마지막 도전이 될 선발전에 출전한 것이다.

어린 자녀들에게도 아버지가 올림픽에 서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 남자 매스스타트의 2장의 평창 티켓 가운데 1장은 일단 이승훈과 메달을 다투는 조이 맨티아가 가져갈 것이 유력하다.

맨티아의 파트너 자리 1장을 놓고 겨루는 상황인데 현재 랭킹 포인트 6위인 부티엣은 7일 매스스타트 레이스에서 등수를 많이 끌어올려야 평창을 바라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25살이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다"는 그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실패가 두려웠으면 애초에 아이스 스케이트를 신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평창에 서게 되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다면 부티엣은 "메달을 최대한 작게 여러 조각으로 자른 후 지금까지 나를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한 조각씩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