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경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김대명 씨는 “인간 이면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며 “당선을 디딤돌 삼아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던 지난 2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춘문예 등단자를 만나면 십중팔구 “당선되기 전까지의 불안감과 막연함이 제일 힘들고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정확한 심사 기준이 없는 전쟁터에서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한 명의 승리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18 한경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서 ‘소나타 1901’로 당선된 김대명 씨(26)는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시나리오의 소재를 선택하고, 작품의 틀을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쓴 지난 2년이 너무나도 좋았다”고 말했다.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아주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김씨가 시나리오를 처음 써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군에서 제대한 직후인 2년 전이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건 일단 도전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에 제대하자마자 덜컥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매일 오밤중에 TV를 틀어놓고 만화영화를 몰래 보다 혼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시나리오를 쓴다고 나서니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기 원하셨죠. 2년만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아무 소득이 없으면 공무원 준비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선되지 않았으면 올해 복학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 했었죠. 당선 소식이 저에겐 어느 날 내려온 동아줄 같았습니다.”

그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카페, 술집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도 하루에 다섯 시간씩 무조건 글을 썼다. 작법서를 읽고, 좋아하는 감독인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괴물’을 몇십 번씩 돌려보며 공부했다. 재능은 금방 꽃을 피웠다. 당선 통고를 받던 당시 김씨는 학원 수강생을 대상으로 열린 공모전에서 1등을 해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는 “망설이던 길이었지만 ‘뭐든지 원하는 바가 있으면 두드리면 열린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선작 ‘소나타 1901’은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를 소재로 썼다. 20세기 초 대한제국 때 창단된 최초의 근대식 오케스트라가 지금 알고 있는 애국가와는 다른 애국가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시나리오는 소재가 참신하고 스토리텔링이 입체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대한제국 최초의 애국가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며 “논문과 다큐멘터리, 미국의 행진밴드를 다룬 영화 ‘드럼 라인’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신경쓰는 건 주인공이 역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주인공이 힘든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 ‘왜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충분히 깔려고 노력한다”며 “그래야 주인공에게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면서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등단을 위해 흥미로운 소재로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건 ‘눅눅한 사회 드라마’다. 김씨는 “여성이 임신 기능을 상실했다는 설정을 배경으로 한 미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이면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한 번 시작한 글은 어떻게든 완성하겠다는 집념이 당선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선되면서 글로 밥벌이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앞으로는 더 제대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시나리오 당선작 '소나타 1901' 줄거리

구한말, 민영환은 대한제국의 전권대사로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한다. 러시아 군악대의 위용에 감탄한 민영환은 고종에게 조선의 군악대를 창설하고 국가(國歌)를 만들 것을 청원한다. 하지만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힘을 잃고 조정은 외세의 편에 선 대신들로 가득 찬 상황.

조선군 해체를 계획하고 있던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 고문 다마오카는 군악대 창설을 반대한다. 박제순은 갖가지 명분을 들어, 2개월 뒤 만수성절(고종의 탄생일)에 완성된 군악대의 음악을 연주하라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내기를 제안한다.

민영환이 이를 받아들여 군악대 창설이 조건부 승인되고, 독일의 왕실악장을 지낸 푸른 눈의 사나이 에케르트가 초빙된다. 에케르트 옆에는 17세 홍안의 미소년 백현이 통역원으로 붙게 된다.

에케르트와 백현은 악기 연주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낸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제멋대로인 단원들이 모이게 된다. 단원들은 처음 보는 서양식 관악기와 오선보를 마냥 신기해할 뿐이다.

막막해하던 에케르트는 우연히 백현이 음악에 엄청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백현을 자신과 단원들의 음악적 소통을 도울 군악부장으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단원들은 소년티를 벗지 못한 백현을 무시하고….

설상가상으로 백현의 아버지 백근배는 연습실에 들이닥쳐 아들에게 당장 음악을 그만두라고 꾸짖는다. 백현은 고민에 빠지지만 이끌리는 대로 삶을 살아볼 기회라 판단하고 음악에 점점 몰두한다. 에케르트가 주도하고 백현이 중심을 잡은 군악대. 엉망진창이었던 대원들의 실력도 나날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간다.

한편 군악대의 동태를 주시하던 다마오카와 친일파 외무대신은 군악대를 해산시킬 음모를 꾸미는데…. 과연 대한제국 최초의 군악대는 대한제국 애국가를 완성하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을까?

● 당선 통보를 받고

'닥치고 써라' 결실…"새로운 소재로 만날 것"


‘마부작침(磨斧作針)’ ‘벼랑 끝에서 써라’…. 글이 막힐 때마다 보려고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어둔 격언들을 펼쳐봤습니다. 당선 소감을 써야 하는데 멋있는 말이 없을까 하고요. 글귀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내가 정말 벼랑 끝에서 썼던가?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겠다던 노인처럼 땀과 정성을 쏟았나? 처음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그저 기쁘기만 했는데,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겁니다. 그때, 메모지들 사이에 유독 진하게 써놓은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닥치고 써라.’

글쓰기가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재밌고 감탄할 만한 시나리오를 써내고 싶었지만, 제 손끝에서 나오는 글들은 전부 쓰레기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맘에 들지 않고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면 온갖 두려움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노트에 몇 번이고 이 문장을 적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닥치고 쓰자, 닥치고 쓰자, 닥치고 쓰자.’

잠깐의 기쁨을 뒤로하고 다시 ‘닥치고 쓰겠다’는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언제나 그랬듯 내일 아침부턴 새로운 소재를 찾고, 캐릭터를 떠올리고, 사건을 구상하고, 다시 글에 빠져들어 보겠습니다. 이 상이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파트너 남윤재, 교육원 동기들, 선생님을 비롯해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대명 씨는 △1995년 강원 원주 출생 △아주대 심리학과 재학 중

왼쪽부터 김성환·강유정 심사위원.

● 심사평 김성환(어바웃필름 대표)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대한제국 첫 군악대 소재
시각·청각적 구성력 돋보여

한경 신춘문예는 한국 영화의 미래 동력이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열흘에 걸쳐 꼼꼼하게 나눠 읽고, 두 편씩 골라 본심에 임했다.
올해 응모작 중에는 남북 긴장 관계에서 출발한 장르물, 사이코패스 내지는 잔혹한 소년범 이야기, 세대나 성별, 계층이 다른 두 사람이 주인공인 버디물 등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지나치게 기시감이 있거나 진부했다는 점이다. 어떤 점에서든 구체적이면서 새로운 시도가 보이는 작품들을 찾았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소나타 1901’ ‘밤의 목소리’ ‘그 남자의 문제’ ‘탭’이다. ‘밤의 목소리’는 북한 여성이 남한 최고 기업가의 자식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유산 상속 문제나 친자 확인과 같은 멜로 드라마적 요소들이 남북한 현실을 거쳐 새롭게 전개된다. ‘그 남자의 문제’는 수능 출제 위원이 마주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거래에 대한 이야기로 소재가 신선했다. ‘탭’은 탭댄스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논의 끝에 당선작으로 고른 것은 ‘소나타 1901’이다. 최초의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시각·청각적 구성력이 돋보였고, 군악대 일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입체적이며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역사적 소재를 끌어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설득력이 있었다. 영화화됐을 때 상상되는 매력도 역시 높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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