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2018 다시 블루오션 시대로
(4)·끝 - 창조와 성장을 위한 미래 설계

[한경 송년 인터뷰] 블루오션 창시자,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창조적 파괴'가 혁신 동의어?… 큰 그림 일부일 뿐
파괴에만 집착하다보면 시장창출 기회 놓쳐
전략의 본질은 기술혁신 아닌 가치혁신

블루오션은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 전유물 아냐
한국, 과거 성공방식 넘는 전략적 상상력 필요
“이루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한국 기업이 블루오션 전략을 얼마나 실행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격언을 인용했다.

2005년 발간한 《블루오션 전략》으로 글로벌 기업과 경영학계에 블루오션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 교수가 12년 만에 《블루오션 시프트(Blue Ocean Shift·사진)》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갖고 돌아왔다. 지난 9월 발간된 이 책은 블루오션 전략의 원리를 밝힌 전작과 달리 10여 년의 연구를 통해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이동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현실적인 사례를 담았다.

한국경제신문은 2018년 아젠다로 ‘다시 블루오션의 시대’를 정했다. 새로운 시장 창출과 성장을 위한 통찰력을 블루오션 전략에서 찾기 위해서다.

《블루오션 시프트》의 한국어판 출간에 앞서 김위찬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블루오션 전략이 나온 지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기업과 정부, 개인 모두 자신의 영역을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이라는 렌즈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레드오션에 있다고 판단하자 지체없이 블루오션을 창출하자는 목표를 세웠죠. 블루오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생긴 것만으로도 큰 변화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블루오션 열풍이 일부 영역과 기업에 그치고 있습니다.

“블루오션 전략을 실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는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단계와 체계적인 과정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던 거죠. 블루오션이 ‘무엇’인지는 알게 됐지만 ‘어떻게’ 창출할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새로 나온 《블루오션 시프트》에는 무엇을 담았습니까.

“지난 10여 년간 블루오션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비교했습니다. 기업과 정부, 공공부문과 비영리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섹터를 분석해 무엇이 성공하고 왜 실패했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 창출과 성장의 과정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합니다.

“많은 사람이 시장 창출은 ‘창조적 파괴’ 혹은 ‘파괴적 혁신’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대체하는 파괴적 혁신은 새로운 시장 창출이라는 큰 그림에서 보면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기존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시야는 좁아지고 ‘비파괴적 시장 창출’의 다양한 기회를 보지 못합니다.”

▷비파괴적 창출은 무엇입니까.

“기업이나 비즈니스 혹는 일자리 대체나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파괴적 혁신과 달리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습니다. 기존 기업이나 산업을 대체하지 않고서 성장과 고용을 창출합니다. 당연히 덜 위협적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십시오.

“크라우드펀딩, 소액 신용대출 등 다양합니다. 이전에는 없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입니다. 라이프 코칭(life coaching)은 어떤가요. 시장 규모가 미국에서는 20억달러를 넘었습니다. 정보기술(IT)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산업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고 기존 일자리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성장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성장을 위한 방법론으로 파괴적 혁신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입니다. 조지프 슘페터 교수가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혁신을 설명한 이후 ‘파괴’라는 개념이 혁신의 동의어로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파괴에만 매몰되면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기회와 공간을 놓칩니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파괴적 혁신만 강조하면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두려운 조직이나 사람들이 시장 창출을 위한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의 화두는 여전히 성장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선진국 기업을 벤치마킹하고 그들보다 빨리, 싼 가격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를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의 결과라 말합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보다 비교우위에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전략의 본질은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경쟁적 관점은 스스로를 제한된 사고방식에 가두고 혁신적인 전략적 발상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경쟁자보다 빠르고 싸게 만들려고만 하면 본질을 망각하게 됩니다. 한국은 지금까지의 성공 방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전략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입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선도업체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고객이나 사회에 어떤 의미있는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이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는 경쟁 패러다임에 의해 설계되고 유지돼온 이유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방해서는 1등이 될 수 없지만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불확실성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길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런 환경 변화에서 블루오션 시프트가 더욱 중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상황에서야말로 본질적 가치에 입각해야 합니다.”

▷블루오션 전략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더라도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고 순식간에 레드오션으로 변합니다.

“블루오션이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이 생기기 마련이고 레드오션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레드오션적 발상으로 경쟁자를 따라하는 기업은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정(journey)’입니다.”

▷실리콘밸리나 글로벌 초일류 기업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요.

“경쟁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와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남다른 능력을 가진 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블루오션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정확한 방법론에 따라 실행한다면 누구나 블루오션 시프트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open economy)인 한국은 대외 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한국은 여전히 활력이 넘치고 잠재력이 큰 나라입니다. 높은 대외 의존도와 제한된 내수시장은 주어진 여건입니다. 이것을 약점으로만 볼 것인가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약점은 발전을 촉진하는 강점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개인의 개방적인 사고가 절실합니다. 생각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 김위찬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경영학계 판도 바꾼 세계적 석학


김위찬 교수는 2005년 출간한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으로 국제 경영학계의 판도를 바꿔 놓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전략경영 교수이자 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특별회원이자 블루오션 글로벌 네트워크 설립자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국가전략 수립을 주도하는 등 세계 각국 정부를 상대로 조언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HBR)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등 세계적인 경영학술잡지에 다양한 논문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2005년 《블루오션 전략》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영학계는 물론 글로벌 기업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 경제월간지 ‘렉스팡시옹(Lexpansion)’은 세계 경영 ‘구루(guru)’에 김 교수와 함께 블루오션의 공동 저자인 르네 마보안 교수(오른쪽)를 공동 1위로 뽑았다. 두 사람이 가치혁신 이론을 집대성한 《블루오션 전략》은 44개 언어로 세계 100여 개국에서 발간돼 400만 부 넘게 팔리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김 교수는 세계 최고 경영사상가 50인의 목록인 ‘더 싱커스(The Thinkers) 50’ 2위에 올랐으며 세계 경영컨설팅기업협회로부터 칼 슬로언 상(2014년)을 수상했다.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리더십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MBA 랭킹스가 발표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교수 5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 교수가 마보안 교수와 학문적 동지로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을 때부터다. 마보안 교수는 “학생 시절 들었던 김 교수의 첫 강의에 매료돼 학문적 동지의 길을 걷게 됐다”고 술회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