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여개국에서 잇따른 법인세 인하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내 미국기업 U턴 '들썩'
항공·AI 등 첨단업종 미국행 인기 끌 듯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미국 감세정책의 파급 효과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세제개편안이 지난 20일 의회를 통과했다. 최종 확정된 세제개편은 현행 최고 법인세율 35%를 21%로 낮췄다. 1986년 이후 31년 만에 가장 큰 감세 조치라고 한다. 무엇보다 ‘금융 통화정책’을 주로 쓰던 미국이 ‘재정 정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방향축을 돌린 것이 가장 큰 특색이다. 내년부터 시행될 세제개편의 감세 효과는 앞으로 10년 동안 1조5000억달러(약 13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감세의 파급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일부에선 글로벌한 ‘조세 전쟁’이 시작됐다고 하고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중국이나 싱가포르에선 자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주 중국 경찰은 광둥성에서 암거래은행(underground bank)을 개설하고 700만달러를 불법 환전한 거래상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기업들은 중국 당국이 예의주시하는 지역에 투자하기 위해 이런 암거래은행을 이용한다. 대미 투자도 물론 이런 통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이 암거래은행을 집중 단속하고 나섰다.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막으려는 시도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줄곧 추진한 법인세 인하 성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중국으로 유입된 자금이 법인세 인하로 다시 미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중국 인민일보가 지난 4월28일자 ‘누가 미국 세제개혁의 승자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이 감세에 착수하면 국가 간 조세 전쟁이 일어나게 돼 국제사회의 조세 질서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민감한 반응 보이는 중국

중국은 해외 기업 투자에 세제 우대를 많이 해주는 국가다. 이 같은 우대 정책이 중국의 대외경제 개방을 뒷받침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로 인해 해외 자금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 중국은 중국으로 흘러든 미국 자본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우려한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 감세정책에 민감해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감세정책에 의해 중국을 지탱한 발전 모델이 일시에 붕괴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중국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감세 정책을 펴야 하지만, 감세로 세수가 줄어들어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미국이 감세와 금리 인상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그것은 중국의 자본 활용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라고 중국 언론이 지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은 선진국에서 사용 중인 조세법 체계도 부정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감세에 따라 미국 기업들의 혁신이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미국 기업들은 감세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면 엄청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제조업과 경쟁해도 승산이 있다. 조세 관련 연구기관인 ‘택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이번 감세로 인한 자본스톡의 증가 폭이 9.9%에 이를 전망이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감세 통해 원가비용 절감 가능

이 같은 경쟁 압력은 중국 시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주광야오 중국 재정부 차관은 미국의 세제개혁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의 조세정책 변화로 인한 외부 영향을 그냥 놔둬선 안 된다”며 “능동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볼딩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이 더 이상 저비용 생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중국만이 아니다. 세계 모든 국가가 미국 감세 정책의 파급 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스테파노 미코시 이탈리아 상장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법인세 인하 압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싱가포르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싱가포르 미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싱가포르 소재 미국 기업은 4200여 개로 추산된다. 이들의 싱가포르 직접투자는 2580억달러가량이다. 이들 기업이 싱가포르에 머무는 이유는 17%밖에 되지 않는 법인세와 각종 지원 제도들이다.

금융 완화에서 재정확장으로

기업하기 좋은 문화나 법적 인프라는 덤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소재 미국 통신회사 브로드컴이 들썩이고 있다. 연매출 250억달러 규모의 이 회사가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당국은 다른 기업들도 브로드컴을 따라 나설지 걱정하고 있다. 사이먼 포 싱가포르대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법인세 감세에 매우 민감하다면서 설립 수년밖에 되지 않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법인세율이 미국보다 더 높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은 더욱 우려가 많다.

많은 국가는 미국에 대응해 직접 법인세를 내리고 있다. 2016년 법인세를 내린 국가는 5개국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6개국이 법인세를 인하했다. 일본 정부도 기업의 법인세 실질 부담을 2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000년 32.2%에서 2016년 24.7%로 낮아졌다.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에서 감세나 인프라 투자 등 재정 확장 정책으로의 이행이 지구촌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효과’다.

세계적 감세전쟁의 시작

학계에선 미국 경기가 호황인데도 불구하고 재정 확장 정책을 쓰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에선 후순환적 재정부양(late cycle fiscal stimulus)이라는 표현을 쓴다. 감세와 인프라 투자 등이 경기를 더욱 자극해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것도 금융 완화처럼 각국이 동참한다.
전문가들은 방위산업이나 항공산업 등 미국에서 우위를 점하는 업종들이 감세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고 분석한다.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관련 벤처기업 등도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도 이제 기업에 매력적인 곳으로 변했다. 일부 주는 조세피난처라고 내세운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 시작됐다. 특히 다국적 기업에는 좋은 투자처가 됐다. 미국은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3조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수입이 미국으로 와야 하고 미국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 지금 미국이 금융 완화에 이어 또 한 번 세계 경제를 바꿔놓고 있다. 내년부터 기업 유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법인세를 오히려 인상했다.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간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