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결과적으로 기업 길들이기 한 것 아닙니까.”

디스플레이업계의 한 관계자는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LG디스플레이 중국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 설립을 승인하자 이같이 말했다. 전례 없이 소위원회까지 구성하며 LG디스플레이와 협력업체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시간만 끈 셈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OLED는 국가 핵심 기술로 분류돼 중국에 공장을 지으려면 산업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난 7월만 해도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이미 수개월에 걸쳐 산업부 측에 기술유출 방지 장치와 해외 투자 필요성을 설명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LG디스플레이 측은 “8월이면 승인받아 공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이 깨진 것은 9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다. 백 장관은 “롯데가 사드 보복에 중국에서 철수한 것을 보라”며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에 국내 투자를 강조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우호적이던 산업부의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다. “광저우 공장 승인 여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며 관련 업무를 하는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 산하에 소위원회까지 따로 구성했다.

이후 LG디스플레이는 2~3주에 한 번씩 열리는 소위원회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제품을 얼마나 빨리 양산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디스플레이사업에서 소위원회의 시계는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앞둔 11월에는 “청와대가 중국 정부에 대한 선물로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기업 사활을 건 투자가 정부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줬다.

물론 정부가 국내 일자리 보호와 산업기밀 유출을 이유로 해외투자 심사를 하는 절차는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전에 정부와의 교감 속에서 투자 결정이 이뤄졌고 현지에서 부지공사까지 끝난 투자 건을 넉 달 이상 표류하게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부가 진정으로 국내 일자리 문제를 고민한다면 노동개혁, 규제완화 등과 같은 투자활성화 방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른 나라가 다 내리는 법인세를 한국 혼자 올려도 아무 소리도 못 하는 것이 산업부의 현주소 아닌가.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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