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디자이너 출신 화가 채림 씨, 학고재 개인전

채림 씨의 ‘At Sunrise’.

보석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서양에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시각예술을 고민했다. 50세 접어들면서 한국 전통공예에서 현대적 시각예술을 뽑아내리라 다짐했다. 조상의 예술혼이 그토록 영롱한지 몰랐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전칠기 기법을 현대적 시각예술로 승화하려 한 열정은 갈수록 커졌다. 디자이너 출신 화가 채림 씨(54)가 옻칠회화로 한국 전통미학을 계승하려는 사연이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22일 개인전을 시작한 채씨는 “한국적인 미학을 위해 지난 10년간 옻칠작업을 이어왔다”며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한국 전통예술을 당당히 현대미학으로 승화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채씨는 2000년부터 보석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4년 데뷔한 늦깎이 화가다. 활동 기간은 짧지만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해 파리 갤러리 BDMC를 비롯해 뉴욕 에이블 파인아트갤러리, 뉴저지 프린스턴 갤러리 등 해외 유명 화랑의 초대를 받았고 올해는 런던 사치갤러리, 파리 그랑팔레, 뉴욕 피어94 등에 작품을 내걸었다.

다음달 28일까지 이어지는 개인전 주제는 ‘자연이 자연을, 예술이 예술을 만나다’. 목판 위에 수십 번 옻칠한 뒤 자개, 순은, 호박, 산호, 비취 등 전통보석을 붙여 제작한 회화 20여 점을 걸었다.
그의 옻칠화에는 선조의 예술혼을 드러내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태도와 장인정신이 녹아 있다. 작업 공정은 복잡하다. 고운 흙가루를 바른 나무판에 삼베를 붙이고 표면을 매끈하게 사포질한 위에 다시 흙가루를 붙이고 옻칠을 한다. 굳기를 기다려 또 칠하기를 여러 차례, 보석을 올리고 자개를 붙인 다음 칠해야 완성된다. 절묘한 ‘무기교의 기교’의 감성 세계가 엿보인다.

고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들은 영롱한 빛을 발한다. ‘춤추는 버드나무’는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직접 가 버드나무와 수련을 보고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자개에 아교를 칠해 납작하게 붙이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자개를 브로치 달 듯 핀으로 하나하나 고정했다.

17개 화면으로 구성한 작품 ‘숲속을 거닐며’는 하나하나 숲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표현함과 동시에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한 그루의 소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채씨는 자신의 옻칠화 작품에 대해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 옻칠의 장점과 현대 보석 디자인의 조형미를 융합했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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