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1·2위 후보 정책자료집 보면 정책 대신 정치구호만 가득
지도부·조합원간 거리 줄여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새 지도부를 뽑는 데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당초 지난 6일 마감 예정이던 1차 투표는 저조한 투표율 탓에 7일까지로 하루 연기됐다. 이후 개표가 이뤄졌지만 14일 일부 투표함이 집계에서 누락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개표됐고 19, 20일 이틀간 개표가 누락된 사업장(4만9356명)을 대상으로 이례적인 재투표까지 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선거관리가 허술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지도부와 조합원 간 인식 차이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지적이다. 총파업과 정치구호만 일삼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조합원의 관심사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 이번 선거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선투표에 오른 두 후보의 주요 공약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후보자 4명 중 1, 2위를 차지한 두 명의 후보자를 중심으로 22일부터 결선투표를 하고 있다. 결선투표는 28일 마감된다. 후보자는 기호 1번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과 기호 2번 이호동 전 발전노조·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이다.

김 후보의 정책 공약집 첫줄엔 ‘노동기본권 혁명’이 적혀 있다. 노동기본권 전면 보장을 위해 헌법 개정 운동을 하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운동을 펼치겠다는 공약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합법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대다수 근로자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 후보의 정책자료집은 ‘정책자료집’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다. 정책 대신 ‘한상균 집행부는 약속을 지켰다’ ‘투쟁 없는 교섭은 쟁취도 없다’ ‘80만의 결집으로 또 한번의 승리를’ 등의 정치구호가 주로 담겼다. 정책으로 내세운 건 ‘노조 간부의 의무 교육 이수’ ‘조합원의 주체화’ ‘대의원 직선제 추진’ 등이다. 이 공약을 보고 투표에 참여하려고 마음먹은 조합원은 몇 명이나 될까.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이 두 번째 치르는 직선제다. 민주노총은 조합원과의 괴리를 줄이고 참여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아 2014년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꿨다. 하지만 선거 형식 변경만으로는 지도부와 조합원 간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게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차 투표율은 재적 선거인 79만3760명 중 42만7421명이 참여해 53.8%를 나타냈다. 투표일을 하루 늘리지 않았으면 투표 성립요건인 50%(재적인원 과반수)를 넘지 못해 투표 자체가 무산될 뻔했다.

새 지도부가 조합원과의 괴리를 줄이지 못한다면 ‘200만 민주노총 시대(김 후보 공약 중 하나)’는커녕 80만 명의 조합원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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