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어느 쪽이 정답이냐’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문제는 2년 전 판단 기준을 세울 때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겁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법 집행 가이드라인’ 변경과 관련한 언론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내린 순환출자 관련 판단을 2년 만에 번복한 데 대한 배경설명이었다. 공정위 지침이 바뀌면서 삼성SDI는 난데없이 합병법인 보유주식 404만 주(지분율 2.1%)를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공정위는 2015년 9월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자 순환출자 문제를 살폈다. 실무진은 처음엔 ‘SDI→옛 삼성물산→삼성전자→SDI’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합병으로 인해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가 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따라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SDI가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주식 904만 주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종중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이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을 만나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공정위는 이후 전원회의를 열어 ‘신규 순환출자 형성이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 강화’로 결론냈다. SDI가 기존 순환출자 고리에 없던 제일모직 지분(통합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만 매각하면 되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 관련 1심 판결에서는 (결론 변경이) 삼성의 로비가 성공한 결과로 보고 있다”며 “실무진 판단이 마지막 순간에 바뀐 만큼 판단 기준에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에는 ‘실무진’이 아니라 ‘공정위’의 판단이 최종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015년 공정위 판단은 전원회의라는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과였다. 김 위원장이 실무진 판단의 일관성을 주장하면서 정작 중요한 공정위 판단의 일관성은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실무진은 “삼성의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 위원장 스스로도 “500만 주 매각 결정이 위법한 판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삼성이 당시 불법 로비를 했다면 향후 확정판결을 통해 응당한 처벌이 내려질 일이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삼성 관련 의혹을 근거로 모든 대기업집단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는 것은 신뢰 보호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신뢰 회복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이 공허하게 들릴 따름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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