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판’.

한 전기수(傳奇: 조선 후기에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어주며 먹고산 사람)가 “이리 좋은 날 여기 모였으니, 시원하게 한 판 놀아봅시다!”라고 말한 뒤 국악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든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전통 마당극을 보는 것 같다. 장면이 바뀌어 한 여성이 방에서 소설책을 필사하고 있다. 그는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소설 속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은 서정적인 발라드곡을 부른다. “내가 보고자 하는 소설은, 내가 쓰고자 하는 세상은, 밝게 빛나는 저 달처럼 밝은 꿈 같은 곳….” 서양 뮤지컬의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다.

서울 정동극장에서 지난 7일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판’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3월 CJ문화재단 제작 지원으로 서울 대학로에서 첫선을 보인 당시 24회차 공연이 대부분 매진되며 주목받았다. 이번 공연은 두 번째 무대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나라가 금지한 소설 읽기를 몰래 하는 이야기꾼 전기수의 얘기를 다룬다. 양반 달수는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매일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소설 읽기를 접하고 빠져든다. ‘프로 전기수’ 호태가 그를 제자 삼아 전기수 일을 가르쳐준다. 그러던 어느날 조정에 적발돼 이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판에는 우리 전통 음악과 무용, 서양 넘버가 두루 나온다. 벨칸토 창법(아름다운 소리와 부드러운 가락에 중점을 둔 18세기 이탈리아의 가창 기법)으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북과 장구 소리에 맞춰 우리 전통 창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 간 조화는 시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은 탈춤이나 어깨춤을 추다가 난데없이 인형을 들고 나타나 인형극을 한다. 배우들의 복장은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된 개량한복이다. 무대는 마당극처럼 가운데 마루가 불쑥 솟아 있지만 조명을 화려하게 사용하는 모습은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장르의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철학,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작품을 만든 변정주 연출가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전부터 시도해왔다. 지난해 선보인 뮤지컬 ‘아랑가’에서는 전통 음악을 뮤지컬적 요소에 절묘하게 결합시킨 점을 인정받아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연출상을 받았다.

변 연출가는 “이번 판 공연은 초연 때에 비해 음악에 한국적 색채를 많이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뮤지컬의 눈으로 보면 뮤지컬이 아닐 테고, 국악 또는 전통연희의 눈으로 바라보면 국악도 전통연희도 아닐 것”이라며 “이런 시도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안보다는 무엇이 나올지 설렘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오는 31일까지. 3만~5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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