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규제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가상화폐의 금전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제도권 안에 두고 규제하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대신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둔 범(汎)정부 공동 대책을 마련했다. 투자 원금 보장을 약속하는 등의 가상화폐 거래는 유사수신행위로 간주하고 관련 처벌 수위를 높이는 식이다.

이를 두고 핀테크(금융기술) 등 관련 업계에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가상화폐와 관련 사업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합리적인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투기만 막는 단기적 대책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자를 보호할 여러 규제를 마련해 건전한 시장을 조성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최근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거래소에서 사고가 잇따랐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게 결국은 제도적인 틀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가상화폐 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드는 것은 업계 차원에서도 반대한다는 얘기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더 큰 금융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정부가 아예 손을 떼야 한다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지나친 간섭을 한다면 가상화폐를 비롯 신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자율 규제와 정부 규제를 병행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맞짱토론 주제는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와 오정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금융IT학과 특임교수(ICT금융융합학회장)가 각각 찬반 의견을 제시했다.

찬성 - 투자자 보호·공정거래 시스템 등 시장질서 바로잡을 규제 있어야
단기적인 대응은 시장의 한탕주의만 부추겨


국내 가상화폐 거래자는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되고 하루 거래대금만 1조~6조원에 달한다. 규모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가상화폐 거래 시장은 투기장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 장치도 갖추지 못한 가상화폐 거래소가 난립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시장은 빠르게 변하는 데 비해 ‘규제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타나는 문제다.

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가상화폐 관련 긴급 대책’은 규제가 아니라 투기를 바로잡는 대책에 그친다는 생각이다. 당장 필요한 건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적절한 규제지만,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 거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규제 마련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이미 가상화폐 시장은 판이 커졌다. 이 커진 판의 질서를 초기에 제대로 잡지 않으면 투기나 범죄 등 부작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이 앞다퉈 ‘규제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는 것은 최소한의 시장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장치를 갖춘 건전한 사업자들로 시장이 구성되도록 일정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지금은 거래자가 피해를 입어도 법적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각종 사고가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지난 9월29일 가상화폐 공개(ICO) 전면 금지를 시작으로 몇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도리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9월 말 1코인당 500만원을 밑돈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두 달 만에 1000만원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2000만원까지 넘나들고 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건전하게 견인하고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 충고를 무시하고 단기·대증적인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부 대응책의 문제점은 일관성 부재,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그것이 낳은 변화상에 대한 몰이해로 요약된다. 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중의 관심과 돈이 몰리는지, 어떤 기술적 가치가 내재해 있는지, 다소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향후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을지 등 제기되고 있는 여러 논점에 대한 차분한 연구와 고민 없이 밀어붙이기식 대응만 난무한다.

모든 버블은 예견이 어렵다. 버블이 꺼지고 난 다음에야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2013년 등 여러 차례 급등과 급락의 변곡점을 넘으며 여기까지 온 새로운 발명품이다. 전통적 안전자산이라는 금은 어땠나. 1971년 금태환제가 중지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후 10년간 금 거래가 추이는 비트코인의 그것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금조차도 금융시장 영역에 진입할 때는 비이성적으로 폭등하고 때론 조정되며 안착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고 성급하게 예단하는 것, 반대로 끝없이 오르기만 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등 양극단의 입장은 상황을 올바르게 만들어 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장기적인 전망에 기반해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 투자자 재산 보호, 공정한 거래 시스템, 혼탁한 시장에 제대로 된 정보 제공하기 등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규제당국이 민간과 협력해 이런 과제를 차분히 해결할 때 시장 참여자들 역시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투자에 임할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 공백 상황에서, 부정적 입장에 기반해 엄포를 놓거나 합리적 규제를 외면하는 태도는 시장의 한탕주의만 부추긴다.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엄포만 놓고 정작 책임을 방기하는 모습은 혁신성장, 4차 산업혁명 등의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반대 - 가상화폐는 디지털 혁신의 산물…무분별한 규제로 뒤처져선 안돼
과도기 극복하면 글로벌 화폐시스템 갖출 것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속도의 충돌을 지적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데 비해 관료는 25마일, 정치는 3마일로 달린다고 했다. 하지만 속도가 늦은 집단이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 기업을 억누르는 국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국가는 그렇지 않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이 저해된다는 게 토플러의 경고다.

가상화폐 규제와 관련해 한국에서 속도의 충돌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중국 인민은행 총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제3통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체제에서 달러가 흔들릴 경우 글로벌 경제가 함께 휘청거리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제3통화 역시 달러와 같은 ‘트리핀의 딜레마’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은 기축통화 발행국이 유동성 유지와 신뢰도 유지라는 양립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갈파했다. 기축통화 발행국은 기축통화의 국제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제수지(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해야 한다. 이럴 경우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면 경기 침체를 불러 역시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모바일에 인터넷이 장착된 스마트폰 출현으로 쌍방(P2P)거래가 가능하게 되고 블록체인 기술 등장으로 보안 문제가 해결되면서 쌍방거래를 금융 면에서 종결할 수 있는 화폐, 즉 블록체인 기반으로 거래할 수 있는 가상화폐가 등장했다.

2008년 달러 기축통화국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쌍방거래, 블록체인, 가상화폐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쌍방거래, 블록체인, 가상화폐는 종래 중간 중개기관을 통해 거래되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비효율적이었던 지금까지의 거래 효율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문명사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불록체인은 육성하고 가상화폐는 규제하자고 말하기도 하는데 쌍방거래 블록체인 가상화폐는 ‘삼위일체’다. 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 거래는 금융이 종결되지 못해 반쪽에 그친다.
기술혁신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현재 1200여 개 가상화폐가 난립하는 과도기 혼란이 극복되면 경쟁력 있는 가상화폐 중심으로 안정된 글로벌 가상화폐 시스템이 구축될 전망이다. 1945년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반대해 글로벌 화폐를 창출하자고 주장한 케인스의 꿈이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쟁 결과 남는 가상화폐 발행국은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처럼 외환보유액 보유 효과를 갖게 될 전망이다. 일본이 올 4월 가상화폐를 거래통화로 인정하고 중국 인민은행이 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은 일본 중국이 가상화폐 대국이 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대응해야 한다.

중앙은행 코인 발행으로 통화정책 수행도 가능하다. 이는 민간 코인망이 존재할 경우 초래할지 모를 디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통화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6월부터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원으로 가상화폐 공개(ICO)가 엔젤 벤처캐피털투자보다 두 배 이상 앞서고 있다. 이를 규제하면 벤처기업의 창업 생태계만 악화된다.

일각에서는 개발 초기 투자자들이 과도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 초기 투자자에 대한 보상에 인색한 사회 풍토에서는 혁신이 힘들어진다. 혁신이 없으면 발전이 안 된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 시 옛 패러다임의 저항이 있지만 일정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새 패러다임으로 급속 전환되는데, 뉴 패러다임에 올라탄 자가 승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무분별한 금지로 패자가 돼서는 안 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