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혁신프로젝트 결실

바닥청소·부품정리부터 시작
고참들이 빗자루 들고 솔선수범

현장 문제 메모 써놓고 붙이면 반장들이 공정 개선에 즉각 반영
생산효율 60%까지 뛴 라인도

생산성 높아져 해외수주 잇따라…올해 탄탄한 흑자 기반 마련
지난 11일 강원 원주 문막공단 만도 원주공장에 한 완성차업체 구매팀이 방문했다. 내년 초 양산할 신차에 장착할 전자식 조향장치(EPS) 설비를 최종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구매팀을 응대한 이들은 각 공정을 담당하는 생산직 반장(사무직 과장급)이었다. 통상 공장장이 나서는 다른 회사들과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이상철 기장(생산직 최고 보직)은 “실무자인 반장들이 워낙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강해 설비 검증과 같은 중요한 일도 직접 챙긴다”며 “고객사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도 원주공장 생산 직원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공정 개선 아이디어가 현장 게시판에 붙어 있다.

민노총 사업장의 대변신

만도 원주공장은 자동차의 운전대부터 바퀴를 이어주는 조향장치(스티어링 시스템)를 생산한다. 전체 직원은 850여 명, 그중 생산직은 780명 안팎이다. 이 공장은 올해 17년 만의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까지 8년째 지속해온 현장 중심의 생산성 개선 프로젝트 ‘혁신활동’이 비로소 결실을 맺으려는 순간이다. 박태규 만도 스티어링본부장(부사장)은 “2009~2010년 연간 500억원을 넘어섰던 적자가 지난해 60억원대로 줄었고 올해는 흑자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공장의 적자는 2000년 시작됐다. 1999년 한라그룹에서 JP모간 등이 설립한 사모펀드로 팔린 직후부터다. 외형을 키우기 위한 저가수주가 잦았고 그 부담이 2008년 한라그룹에 돌아온 이후에도 이어졌다. 높은 인건비도 부담이었다. 만도 직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8900만원으로 올랐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원주공장 임직원에게 “오래 걸려도 좋으니 체질을 개선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원주공장은 2010년부터 12년짜리 ‘혁신활동’을 시작했다. 첫 4년은 회사가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지시키는 ‘교육’, 다음 4년은 구체적 생산성 향상 방안을 찾는 ‘학습’, 마지막 4년은 성과를 현장에 안착시키고 숙련도를 높이는 ‘실행’으로 기획했다.

처음에는 바닥 기름때 제거, 부품 정리 등 사소한 과제부터 시작했음에도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만도는 2012년까지 강성노조 대표 격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사업장이었다. 그때 이 기장을 비롯한 고참들이 총대를 멨다. 회사가 팔려나간 경험을 해본 기장·직장들이 빗자루와 걸레를 들자 후배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래로부터의 혁신

원주공장 임직원이 꼽는 혁신활동의 대표적 사례는 ‘포스트잇 붙이기’다. 근로자들이 각자 작업대에서 일하다가 개선해야 할 부분을 발견하면 포스트잇(메모지)에 적어 라인 게시판에 붙이고, 이를 반장들이 취합해 실제 공정 개선에 반영하는 제도다. 초기에는 회사가 내건 ‘1인당 1년에 10건’의 할당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자신의 의견으로 전체 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장을 목격한 근로자의 자발적 참여가 늘었다. 지난해에는 1만800건 정도 접수했다. 직원 1인당 14건꼴이다.

포스트잇 건의가 올라오면 반장과 회사가 3단계에 걸쳐 답변했다. 건의 다음날은 ‘언제까지 답변하겠다’, 약속한 시기가 되면 ‘어떻게 하겠다’, 그리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게 처리했다’는 식이다. 이 기장은 “이런 과정에서 소통이 되니까 현장 직원의 참여도가 점점 높아졌다”고 말했다.
부품 쌓는 순서나 작업자 주변 정리함 재배치 등 간단한 일부터 공정 전체 설계를 다시 하자는 제안까지 갖가지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생산성이 60%까지 뛴 라인도 나왔다.

생산성이 높아지자 해외 수주도 잇달았다. 지난해엔 미국 포드에 조향부품을 납품하기 위한 연산 50만 개짜리 라인을 새로 깔았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전기차업체로부터 운전대와 바퀴를 기계로 연결하지 않고 전기 신호만으로 방향을 조종하는 ‘스티어바이와이어’ 제품을 수주해 2019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 본부장은 “고임금 등 여러 이유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제조업에 원주공장의 ‘아래로부터의 혁신’ 모델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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