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산업은 꼭 더럽고 힘들다고 생각합니까? 미래형 수산은 깔끔합니다. 안 힘듭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고요.”

정재진 예담수산 대표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옛날에 양식한다고 하면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지요. 맞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 수산이 3D 업종이어야 합니까. 우리 양식장에서는 사람들이 힘 안 써요. 힘 쓸 일이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설이며 장비를 다 해 놨어요.”

정 대표는 한국의 수산업에서 미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양식장도 젊어지거든요. 수산도 젊어지고요. 저는 1차 산업이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 거라고 봐요. 젊은이들도 이 쪽에 비전을 보고 들어올 겁니다. 미래가 여기에 있어요. 두고 보라니까요.”

◆껍데기째 올리는 고급 굴

정 대표는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굴을 키우고 있는 어민이다. 총 굴 양식 규모는 30ha(9만평) 정도. 대부분은 인근의 다른 양식장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중 일부 양식장(1ha‧3000평)은 조금 특별하다. 딱딱하고 거친 껍데기를 깐 후에 팔리는 보통 굴과 달리, 따로 키워 껍데기 모양이 온전하게 남은 채로 출하되는 굴(개체굴)이 자라고 있다. “해외에선 굴을 껍데기째로 식탁에 올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신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수출을 하려고 보면 껍데기 모양을 기준으로 까다롭게 따져요. 그런데 우리 굴은 맛은 참 좋지만 껍데기 모양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굴은 어딘가에 붙어 크는 패류다. 자연산 굴은 바위에 잔뜩 붙어있기 때문에 석화(돌꽃)라고 불린다. 남해안에서 굴을 양식할 때는 가리비 껍데기 같은 것들을 철사에 꿰어 바다 속에 넣어두고 굴이 붙어 자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키우면 많이 키울 수 있지만 하나에 치패(어린 굴)가 여러 개씩 붙어 자라기 때문에 수확할 때 껍데기 모양이 예쁘게 남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떼어내는 과정에서 깨지거나 손상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키우는 굴은 대부분 껍데기를 깐 후에 유통된다.

정 대표는 덩이로 다닥다닥 붙여 키우는 대신 하나씩 따로 키운다. 그래서 굴 껍데기 모양이 둥글고 깨끗한 편이다. 서로 붙어있는 굴을 떼어내려다 손상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통 깐 알굴이 1kg에 870원이라면 모양이 예쁜 개체굴은 kg당 3500원(중국 수출가 기준)이다.

정 대표는 굴을 하나씩 키우기 위해 아파트 층 같은 모양의 ‘개체굴 양식법’을 개발했다. 기존의 굴다발 형식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자랄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굴 망을 만들었다. 이 망을 차곡차곡 굴 틀에 쌓아 바다 속에 넣어 놓는다. 수확할 때는 이 틀을 크레인으로 한번에 끌어올리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굴 껍데기가 크고 예쁘게 자랍니다. 통영의 일반적인 굴 양식(연승수하식) 기간이 18개월 걸리면 개체굴은 8~10개월에 수확까지 끝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는 이 개체굴 양식 기술로 신용보증기금에서 10억원의 보증지원을 받고, 투자전문회사인 BA파트너스, 인라이트벤처스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정 대표는 개체굴 양식법을 내수용 아닌 수출용으로 개발했다고 했다. “외국에서 굴은 어딜 가나 고급 식재료 대접을 받고, 값도 비싸게 받습니다. 껍데기가 있어야 좋은 굴이라고 평가받고요. 개체굴은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껍데기 크기도 일정해 수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생산 단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굴 값이 싼 한국에서 내수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요.”

◆왜 개체굴이었을까

정 대표는 왜 한국에 생소한 개체굴 양식을 시작했을까. 본인이 “힘들어서”라고 했다. “농민들이 서울 올라가서 국회 앞에서 데모하고 그러죠. 그걸 어민들은 왜 잘 안 하는지 아세요? 양식장은 사장 따로, 실제 일하는 사람 따로인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러다보니 수산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잘 발전이 안 됩니다. 사장 본인이 고된 게 아니니까요.”

그는 통영으로 오기 전 부산에서 도시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하던 굴 양식에는 2003년 처음 뛰어 들었다. 만만하게 봤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든 일이 어렵고 까다로웠다. 노하우도 필요했고, 체력도 요구했다. "오래한 어른들은 쉽게 쉽게 해요. 그런데 막상 제가 가서 하려니 어렵더라고요. 숙련도가 필요한 일들이었어요. 이런 식으로는 젊은 인재들이 들어오기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양식 방법을 쉽게 만들자. 정 대표의 목표는 단순했다. 양식 일이 험하거나 어렵지 않도록 효율화하는 것. 여러 굴 양식법을 연구하다 보니 해외의 개체굴 양식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굴을 다발이 아닌 하나씩 키우고 있었다. 이 방식은 굴 외에 다른 패각이 많이 달라붙지 않아 깔끔하고, 굴을 서로 분리하고 알을 까는 과정이 필요없어 일손이 덜 들었다.

“개체굴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요. 개체굴 양식구를 따로 마련해야하고, 전용선도 필요합니다. 저희 양식장 기준으로 1ha에 7~8억원은 투자해야 했습니다. 대신 한번 투자하면 추가로 들어가는 인력이 적고, 수확량도 정확합니다. 보통은 굴을 수확할 때 아줌마 8명 넘게 나가는데, 개체굴은 두 명이서 금방 다 끝내요. 따져보니 2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심이 선 정 대표는 개체굴 양식으로 유명하다는 나라를 직접 찾았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의 굴 양식장을 한 곳씩 돌아봤다. 각 나라마다 개체굴 양식 노하우가 달랐다. 장단점이 있었다. “그 중에 캐나다 식이 남해안과 잘 맞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캐나다식 양식법을 한국 바다에 도입해보자는 생각으로 캐나다 양식구 1억원 어치를 수입했습니다.”

◆ 거듭된 실패 속 9년만에 얻은 성과

수입한 양식구로 통영에서 캐나다식 양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접어야만 했다. 한국의 양식 관련 법에 개체굴 양식에 관한 규정이 없어 불법이 됐던 것. 정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캐나다 식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양식법을 개발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캐나다의 양식구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면적이 넓어 문제가 됐어요. 양식구가 바닷물에 잠겨있으면서도 개체굴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지금의 양식구를 개발하는 데까지는 그 이후 9년이 필요했다. 굴이 자라는 시간이 있어 한번 실험하는 데만 1년씩 걸렸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양식구와 양식법을 보완해나갔다. “힘들었습니다. 기존 굴 양식도 계속하면서 새 양식법도 개발해야 했으니까요. (양식구를 보여주며) 이게 처음 만든 것이고요. 이게 두번째, 세번째. 모두 제 실패의 흔적이지요.”

지금 정 대표의 연구실엔 양식 장비들이 여러 개 있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현재 양식구를 개발하기까지 거쳐온 중간 단계의 장비들이다. 여러 해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해 개체굴을 성공적으로 출하했다. “굴의 모양이 크고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입식한만큼 수확량도 정확했고, 가격도 일반 굴의 4배를 받았습니다.” 정 대표는 이 양식구로 특허를 출원했다.

개체굴 양식에 성공하자 관심을 보이는 곳도 늘었다. 기존 굴 양식이 손이 가고 힘든 탓에 새로운 양식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 대표는 지금 전남 신안에서 개체굴 양식법을 전달하고 있다. “신안엔 어르신들이 많아요. 그 분들이 아직도 열정을 갖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제가 더 자극됩니다. 쉽고 편한 양식법을 개발한만큼, 원하는 곳이 있다면 도와야지요.”

◆1차산업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사무실 어떻습니까. 굴 양식업 사무실치고 그래도 세련되고 깔끔하지 않습니까.”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의 얼굴은 밝았다. 사무실 한켠엔 프레젠테이션용 스크린과 노트북 등이 설치돼있었다. 개체굴 양식이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래픽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한다고 했다. 그는 양식 사무실도 화이트칼라 오피스만큼 멋져야 한다고 했다.

“저는 수산이 달라져야 젊은 사람들도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양식업이 3D업종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직업 못지 않게 깔끔하고, 시간 많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정 대표는 이미 여러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스티로폼을 쓰지 않은 기능성 부표를 만든 것이다. 부표를 바다 위에서 쉽게 뒤집을 수 있게 제작했다. 부착생물이 덜 붙고 회수가 쉽다. 재활용도 가능하다. 스티로폼이 아니기 때문에 해양 오염 우려도 덜하다.

“사실 굴 양식업 절반은 부표 일이에요. 설치하고, 부착생물 제거하고, 회수하고.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죠. 하지만 부표 만드는 회사는 직접 양식업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민들의 고충을 잘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만 바꿔주면 훨씬 손이 덜 가거든요. 저는 제가 직접 쓰려고 이 부표를 만들었어요.”
개체굴 양식을 위해 직접 개조한 선박엔 보온시설과 냉방시설을 따로 설치했다.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장비도 넣었다. “어민들이 바다 위에서 힘들게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닷일이라고 하면 다들 고되다고 아는데,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해서 나름대로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1차 산업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 “작업 과정을 조금만 효율화하면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것들이 이쪽에 참 많습니다. 개체굴이 그렇고요. 지금 제조업 성장도 한계에 부딪혔고 서비스업엔 2등이 없잖아요. 저는 1차 산업이 우리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봐요.”
정 대표의 목표는 통영, 고성에 오이스터 파크(굴 테마공원)를 조성하고 패류사관학교를 만들어서 젊은 양식 인력들을 양성하는 것. 그래서 양식업을 미래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양식을 시스템화, 체계화시킬 거예요. 기술을 보급하고 인재를 키우고 싶습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앞다퉈 양식업을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개체굴 양식 하나만큼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나아가고 싶어요.”

통영=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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