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정부 출범 후 첫 각료회의

다자간 무역 비판해 온 美
"WTO 이전 체제로 돌아가야"
美 이익 대변하지 않는다며
최종 심의위원 임명도 반대

회원국 리더들 보호무역 우려
"美 때문에 통상체계 불구될 수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1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했다. 공식 의제는 각국 정부의 농업·어업 분야 보조금 지급과 전자상거래에 대한 규칙 제정이지만 미국의 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출범 초부터 다자 간 무역체제를 비판했다. 1995년 미국이 주도해 창설한 대표적 다자 무역체제가 WTO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해 왔다.

트럼프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 미국 측은 예상대로 포문을 열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WTO 체제에 대한 불만과 위협을 쏟아냈다.

○“WTO 이전으로 복귀”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간략한 성명을 내고 “이번 회의는 WTO 개혁을 포함해 미국 경제와 무역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지난 9월에도 “세계 각국은 WTO 이전 분쟁 해결 절차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상 WTO 체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주장이다.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회의에 앞서 “WTO는 여전히 가치 있는 기관이지만,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댄 디미코 트럼프 정부 통상자문관도 “우리는 많은 무역분쟁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WTO를 활용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와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WTO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에 비판적인 뉴욕타임스는 “세계 무역의 불확실성이 지금처럼 거센 적이 없었다”며 “미국에서 다자 무역체제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미국의 주권과 기업을 훼손한다고 우려해 왔다. 그는 지난달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WTO에서 우리(미국)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을 겨냥해 “WTO 규칙을 따르지 않는 국가에 관대하고, 규칙을 따르는 미국이 처벌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미국 측은 이날도 WTO의 분쟁처리기구 최종심의위원 결원 세 명을 메우는 작업에 반대해 회원국들의 반발을 샀다. 최종심이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1995년 이후 2016년까지 WTO에 112건의 무역분쟁을 제소했다. 그러나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제소당한 것은 129건으로 17건 더 많다.
중국은 미국의 독려로 2001년 12월 WTO에 가입했다. 그런 미국이 WTO 체제를 비판하고 탈퇴를 위협하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자유무역은 지속돼야”

개막 첫날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자유무역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앨런 울프 WTO 사무차장은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가장 핵심적 도전은 무역시스템 내 미국 리더십의 부재”라며 “세계 무역시스템 관리에서 필수불가결한 국가인 미국이 지금 그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 방송은 “다른 국가들은 미국이 예전처럼 WTO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13일까지 열리는 회의에서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발언마다 회원국들의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관료들은 “미국이 세계 자유무역의 걸출한 수호자라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회의는 (자유무역을 향해) 극적으로 전진하는 일이 없는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기조 때문에 현행 통상체계가 불구가 될 수도 있다”고 비관했다.

미국이 WTO 체제에 회의적이자 일본이 총대를 메는 분위기다. 이번 회의에서 일본 측이 EU와 함께 공정무역을 왜곡하는 국가들에 시정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나서서 미국을 (달래) WTO에 확실히 결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철강 등의 과잉생산과 국유기업의 불투명한 보조금 지원 등 금지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미·일·EU가 협공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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