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 될 때까지' 합격기준 바꾸고
기관장 사모임 회원 '밀어주기 채용'도

275개 기관 특별점검
2234건 지적사항 적발, 143건 문책·23건 수사의뢰
고득점 일반인 점수 깎고 무자격 청탁자 서류 뻥튀기고
고위인사 청탁한 지인 뽑으려 인사·면접위원회 변경하기도

공공기관장 A는 인사권을 휘둘러 채용과정을 자신이 속한 사(私)모임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는 2014년 모임 회원 B를 채용하기 위해 같은 모임 회원인 직원들을 면접위원에 앉혔다. 손쉽게 면접을 통과한 B는 인사위원회조차 거치지 않고 바로 임용됐다. 기관장 C는 아예 대놓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지인을 채용했다. 분명 채용공고에는 ‘상경계열 박사’라고 적시돼 있었지만 인사팀에 압력을 넣어 D를 서류전형에 합격시켰다. 면접장에 불쑥 나타나선 D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지원사격’했다. D는 가뿐히 ‘신의 직장’의 일원이 됐다.

‘부적합 채용’ 비일비재

공공기관 채용과정에서의 ‘복마전’ 실체가 정부의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정부는 8일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 주재로 채용비리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특별점검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특별점검은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330곳 중 감사원 감사를 마쳤거나 부처 자체감사를 받은 55개 기관을 제외한 275개 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 10월27일 정부는 감사원 감사에서 강원랜드와 금융감독원 등의 채용비리가 확인되자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모든 기관의 채용실태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총 2234건이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위원 구성 부적절(527건), 규정미비(446건), 모집공고 위반(227건), 부당한 평가기준 적용(190건), 선발인원 변경(138건) 등이다.

부정지시·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도 166건 적발됐다. 정부는 이 중 23건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143건은 문책과 중징계 등 조치했다. 특별점검과 별개로 지난 1일까지 ‘채용비리 신고센터’에도 290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정부는 사실관계 확인 등을 거쳐 21건을 추가로 수사 의뢰했다.

정부 “공공기관 채용제도 개선 추진”

이날 정부가 공개한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유형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기관장이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나 면접에 들어가는 위원을 내부직원만으로 꾸리거나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한 기관장은 당초 면접위원이 아니었던 직원을 임의로 면접장에 들여보내 면접 대상자 두 명 중 특정인에게만 계속 질문하도록 했다. 질문을 하나도 받지 못한 다른 지원자는 결국 탈락했다.

우대사항 가점 등 점수를 고의로 조작하거나 채용절차 중 전형별 배점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평가기준을 부당하게 운용한 사례도 있었다. 올초 E기관은 특정 집단 응시자들을 면접에 올리라는 기관장의 지시를 받고 고득점이 예상되는 다른 응시자의 점수를 모두 깎아버렸다. 2015년 F기관에서는 지역 유력인사의 자녀를 채용하기 위해 다른 가점 대상자에게 일부러 가점을 부여하지 않아 불합격 처리했다.

특정인을 뽑기 위해 전형별 합격자 배수를 임의로 바꾼 기관도 상당수였다. 2014년 G기관은 선발 예정인원의 5배수를 서류전형에서 뽑기로 해놓고 중간에 30배수로 변경했다가 막판에 다시 45배수로 늘려잡았다. 서류전형 점수가 턱없이 낮은 H를 면접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결국 H는 ‘고무줄 전형’에 힘입어 최종 합격했다.

정부는 당초 부정합격자 취소 조치 등을 검토했지만 현행법으로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관은 “기관장의 직접 개입이 확인된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며 “연말까지 감사체계 정비, 적발·처벌 강화, 규정미비 보완 등을 포함한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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