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대 시흥캠퍼스의 공식 착공을 알리는 선포식장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3대 대기업의 수뇌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시흥캠퍼스에 세워질 자율주행자동차 시험 트랙을 중심으로 한 공동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위해서다. 경쟁사 최고경영자가 한데 모이는 흔치 않은 광경이 흙먼지 날리는 공사장에서 펼쳐진 것.

서울대는 이 순간을 위해 지난달 21일 개최 예정이던 선포식을 이날로 미뤘다. 작년 겨울부터 올 여름까지 228일에 걸친 반대 학생들의 본관점거, 빨리 사업을 추진해달라는 지자체·지역주민의 압박 등 우여곡절에도 공식 출발을 늦춘 이유에 대해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시흥캠퍼스에서 어떤 미래가 그려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서울대는 시흥캠퍼스를 통해 소위 ‘서울대 위기론’으로 상징되는 대학의 정체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과거의 위기론은 ‘서울대가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다분히 정치적 성격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술혁명 시대의 대학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대는 타개책으로 시흥캠퍼스를 거대한 ‘빅데이터 유전(油田)’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흥캠퍼스 전체를 자율주행차 실험이 가능한 테스트배드로 구축하고, 2020년엔 그 범위를 캠퍼스가 있는 배곧신도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같은 산학협력 실험은 세계적 추세다.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최근 인공지능(AI)연구를 위해 포르쉐, 다임러, 보쉬 등 회사와 손 잡고 독일판 실리콘밸리인 슈투트가르트 ‘사이버밸리’에 진출했다. AI,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 등 어떤 4차 산업혁명 연구도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실증데이터 없인 불가능하다는 공감대에서다.

시흥캠퍼스에서의 산학협력 역시 단순한 공동연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3개 대기업과 서울대 뿐 아니라 하닉스, 성우모바일 등 중소벤쳐기업이 66만㎡ 전체를 자율주행차 실험장으로 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기업들도 2018년 2월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10개 이상의 기관이 발명한 자율주행차가 캠퍼스 안을 누비며 데이터를 생산할 예정이다. 국내 첫 자율주행버스 실험도 이곳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능성에도 시흥캠퍼스 사업은 10년 가까이 지지부진 미뤄져왔다. 2007년 첫 구상이 발표된 후 2009년 시흥 배곧신도시가 사업지로 선정되며 부지가 확정됐다. 지자체와 기업이 조단위 가치의 땅과, 건물을 지을 재원까지 마련해주는 이 사업에서 서울대는 컨텐츠만 마련하면 됐지만 갖가지 이유로 사업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가장 큰 원인은 뿌리깊은 서울대의 관료주의다. 야심차게 홍보해가며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4년 임기의 총장이 바뀌자 사업은 새롭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세부 사업 역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계획을 새로 짜는 ‘도돌이표 행정’이 반복됐다. 수없이 많은 교수들이 ‘미래를 이끌 연구’라며 시흥캠퍼스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정작 책임지고 ‘비즈니스’에 나서는 이는 없었다. 과거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에 관여했던 한 교수는 “구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모두가 청사진만 내놓을 뿐 재원 마련 등 실천방안은 없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1년마다 새로 뽑히는 학생회에도 시흥캠퍼스 사업은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2016년 학생회는 서울대 본부와 함께 기숙형대학(RC)의 세계적 성공사례라 불리는 싱가폴국립대(NUS)를 견학 후 “시흥캠퍼스에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건립한다”는 합의서까지 작성했다. 이 합의는 다음 반년이 지나 새롭게 들어선 학생회에 의해 파기됐고, 몇십명 학생들이 행정관까지 점거하며 반대에 나섰다. 결국 시흥캠퍼스 계획에서 학생 기숙사는 제외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비싼 돈을 주고 월세살이를 하는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이제는 이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됐다. 막을 올린 이상 서울대는 더 이상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에 빠져 있어선 안된다. 서울대가 열을 올려 홍보하듯 유래 없이 3대 기업이 협력하는 초유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새로운 캠퍼스를 만드는 건 학문이 아니라 사업이다. 이미 서울대 내부적으로 축적된 시흥캠퍼스 아이디어는 50개가 넘는다. 서울대에 필요한 것은 이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제철소가 실패할 경우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고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의 책임감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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