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기존 사업자 지분 100%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21조원에 달하는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일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우선 국내에서 탈(脫)원전 정책이 추진되는 와중에 해외, 그것도 선진국에 원전을 수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원전 수출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두 번째이지만 선진국에 짓는 것은 처음이다.

원전 수출은 다 지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후 수십 년간 운영 유지 보수가 이어져야 한다. 국내 탈원전 정책이 수주에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것은 한국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한국의 원전 건설단가는 중국 일본 프랑스보다 싸고, 공사 기간은 이들 국가보다 짧은 데다, 고장 정지율은 가장 낮다. 막판까지 추격해온 중국을 따돌리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비결이다.
교훈도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을 발주한 영국은 원래 원전 종주국이었다. 1956년 최초의 상업 원전을 가동했다. 하지만 한동안 원전을 짓지 않은 탓에 이제는 후발 외국 업체에 건설을 맡기는 처지가 됐다. 건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기술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1977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총 25기를 지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에서 기술을 축적했고, 관련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정부는 ‘탈원전과 수출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위험하다고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수출은 하겠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무어사이드 원전 착공 시기는 4~5년 뒤라고 한다. 탈원전 정책이 지속될 경우 그 사이 국내 원전 생태계는 거의 붕괴될 것이다. 영국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게 뻔하다. 우선협상대상에서 최종 수주로까지 이어지려면 정부 차원의 지속적 관여와 지원은 필수다. ‘원전 굴기’를 내세운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원전 기업에 보조금을 주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젠 원전 수입국이 된 영국이 한국의 미래 모습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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