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신의 직장' 옛말… 창구 직원은 '감정 쓰레기통' ㅠㅠ
"핀테크 바람에 스마트폰 들고 친구 찾아가 앱 상품 팔아요"

요즘 은행원으로 산다는 건…
K뱅크·카뱅 등장… 고객 쓸어모아
지점 줄면서 업무는 갈수록 늘어

임원 승진해도 1~2년만에 '아웃'
은행원이라서 '대출 역차별'도

고소득·육아 환경 등 혜택도 많아
남녀비율 비슷해 사내커플 많아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두둑한 월급과 단정한 근무복…. 은행원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준비생에게 은행은 최고 직장이다. 하지만 ‘은행맨’들은 “예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저성장 시대에 치열한 영업 경쟁에 내몰린 데다 인터넷전문은행까지 등장하면서 위상마저 점점 흔들리고 있어서다. 창구직원들은 이른바 ‘진상 고객’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각종 온라인 및 모바일 상품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친구들에게 금융 상품을 권해야 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고달파진 은행권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강도 높은 감정·육체노동

은행 영업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나날이 심해지는 감정노동에 따른 후유증을 호소한다. 은행마다 영업점을 줄이면서 1인당 업무량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창구직원을 괴롭히는 ‘불량 고객’이 늘고 있어서다. 대부분 온라인뱅킹 등 비대면 채널을 이용하다가 문제가 생겨 화가 난 상태로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많아서다.

한 시중은행 수도권 영업점 창구에서 근무하는 방 대리는 매일같이 창구로 밀려드는 고객의 민원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엔 진상 고객을 만나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한 고객이 창구로 다가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사달이 났다. 방 대리가 나름 상냥하게 응대했지만 고객은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본점에 알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창구 앞에 드러누웠다. 방 대리는 그날 퇴근길에 혼자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로 쓰린 속을 달랬다고 한다. 급기야 최근 들어선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납득하기 어려운 고객들의 민원을 듣고 있으면 제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창구를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은행권에 핀테크(금융기술) 바람이 불면서 영업 환경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에서 근무한다는 말도 옛말이 됐다. 영업을 위해 한여름이나 겨울에도 밖에서 뛰어다닐 때가 많아져서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점포에 근무하는 김 과장은 “영업점 근처 재개발 아파트의 입주자 사전 점검 때 좋은 자리에 영업용 천막을 치려고 새벽에 나와 다른 은행 직원들과 신경전을 벌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요즘은 ‘나와바리’(구역) 개념도 없어져 같은 은행 다른 지점끼리 경쟁할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카드,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등의 영업 부담도 여전하다. 은행마다 새로운 앱이 쉴 새 없이 등장하면서 은행맨들은 더 괴로워졌다. 한 지방은행에 다니는 이 과장은 “처음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어깨에 힘주고 다녔는데 요즘은 친구들에게 각종 상품 가입을 부탁하다 보니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인사 적체 심해 ‘만년 차장’ 속출

은행마다 심각한 인사 적체도 김과장 이대리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대부분 은행에서 연공서열대로 차장까지는 진급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1990년대 호황기 때 대규모 공채로 들어온 차장들이 제때 승진하지 못하면서 고참 차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차장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과장은 “10년 전만 해도 신입 행원이 들어와 지점장이 목표라고 말하면 선배들이 소심하다고 했지만 요즘은 꿈을 가진 인재라고 칭찬한다”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놨다. 경쟁을 뚫고 승진해봐야 별것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원으로 승진해 1~2년 만에 옷을 벗을 바에야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나이까지 근무하고 특별 명예퇴직금을 챙기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보상은 더 많지만 경쟁이 심하고 영업 강도가 더 센 은행은 피하는 추세다. 한 금융권 취업준비생은 “취업만 되면 감지덕지하겠지만 만약 두 곳 이상 합격한다면 월급이 많아도 경쟁이 심한 은행은 피하고, 가늘고 길게 다닐 수 있는 은행을 선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터넷은행 찾는 시중은행원들

재테크에 빠삭할 것 같은 은행원이지만 돈을 빌릴 땐 되레 역차별을 받기도 한다. 금융감독규정에 따른 임직원 대출규제 때문에 재직하는 은행에선 신용대출을 최대 200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어서다. 어쩔 수 없이 은행원이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방은행 서울영업부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회사 대출 한도 때문에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봐도 소득이 비슷한 일반 직장인에 비해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시중은행에 다니는 은행원들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몰려가기도 한다. 김 대리는 “카카오뱅크가 문을 열자마자 가입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며 “부서원 중 절반 넘게 인터넷전문은행에 가입했는데, 낮은 금리에 반해 모든 신용대출을 옮긴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결혼·육아엔 최고 직장

어려움이 커졌다지만 은행맨으로서 누리는 혜택은 여전히 많다. 미혼 행원들에게는 짝을 만나기 좋은 환경이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영업점의 남녀 비율이 비슷하고 직원들끼리 일과 대부분을 부대끼며 지내기 때문에 사내커플이 많은 편이다. 4대 시중은행의 한 차장은 “위아래 기수를 기준으로 20~30%는 사내커플 또는 은행원 커플”이라며 “은행원 둘이 결혼하면 바로 억대 연봉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육아 환경도 좋은 편이다. 최대 2년까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휴직으로 인한 불이익도 다른 기업보다 적다. 최근에는 근무시간을 여건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이현일/윤희은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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