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압박 나 몰라라 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
대화로는 북한 핵능력 포기 이끌어내기 어려워
전쟁은 전쟁을 할 용기 있을 때 막을 수 있어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yjlee@khu.ac.kr >
지난달 29일 북한은 다시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이 화성-15형 미사일이 “국가 핵능력의 완성”이라는 북한 주장대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형태와 크기로는 미사일 방어를 무력화할 여러 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화성-14형에 비해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주변국들의 거듭된 경고와 추가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재개했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과연 북한의 핵능력 포기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다는 점에서 제재가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북한의 생명줄 역할을 해온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국제 제재에 동참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중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의문이고, 설사 그렇더라도 북한이 중국의 뜻을 따른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달 중순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쑹타오 특사를 김정은이 만나주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 후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대화는 비핵화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까. 대화의 효과도 의문이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 포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따라서 미국이나 과거 우리 정부가 표방한 ‘선 포기, 후 협상’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대화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용인하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대화론자들은 북한의 핵 동결 후 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재 상태에서의 동결은 국제적으로 북한을 사실상의 핵국가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화의 긴 터널 끝에 비핵화가 기다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처음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할 때는 체제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핵국가 그 자체가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정받은 핵국가 지위를 북한이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이제까지 우리의 대북(對北) 안보정책은 압박이든 포용이든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전제에 입각해 있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기 지극히 어려운 현실에 비춰 이제 이런 희망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북한이 핵을 계속 보유할 뿐만 아니라 그 핵무기를 우리를 향해 사용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대북 안보정책을 펼치는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점과 관련해 20년 전에 발생한 외환위기도 교훈을 준다. 1997년 외환위기는 정부가 한국의 거시경제 펀더멘털은 건전하다는 국제통화기금(IMF) 발표만 되풀이하는 대신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 하에서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다면 어쩌면 피할 수 있던 위기였다. 1월 한보그룹과 3월 삼미그룹이 각각 부도가 났을 때, 아니 7월에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났을 때라도 정부가 부실 기업과 부실 은행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덜 수 있었다. 외환위기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단기외채는 정부가 IMF의 도움을 구하겠다고 발표한 11월21일에도 81.9%나 연장되고 있었다.

지금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많은 대비책이 있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기업 부채가 크게 줄었고 금융회사 건전성도 확보됐다. 대외적으로는 외환보유액도 많을 뿐 아니라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특히 캐나다와의 무제한 통화스와프로 충분한 ‘총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안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핵무기를 한국에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이 요구된다. 전쟁은 선택지 가운데 전쟁을 포함시킬 때 피할 수 있다. 두렵다고 해서 전쟁을 회피하려 드는 순간 전쟁에 휘말려들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 역사와 국제정치이론의 가르침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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