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댓글·지능적 명예훼손 범람하지만
형벌법규 방식의 사전 규율은 피하고
사안별 사후규제로 표현자유도 보장을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매체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비중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서로 마주보고 말하는 일보다 짧고 단정적인 글로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 그중 하나가 쓰는 사람은 성급하게 배려 없이 글을 올리고 읽는 사람은 문맥 없이 읽고 곡해해서 분개하는 것이다.

명예훼손 시비도 많아졌다. ‘대(大) 고소의 시대’가 찾아왔다고도 한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해달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고소한 뒤 합의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봤다거나 변호사들이 고소를 대리해준다는 얘기가 들린다. 유력한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 국가기관까지 고소인으로 나서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자아를 형성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핵심적 기본권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보장하는 정치적 제도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는 영국 인민협정들 이래 여러 인권선언, 국제협약, 헌법 등에서 줄곧 중시돼왔고 우리 헌법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명예훼손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현대에 와서도 정치권력이나 대중이 좋아하는 표현은 억압받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의 편견에 아부하는 표현들은 늘 환영받으며 그런 표현을 솜씨 있게 내놓는 사람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문제되는 것은 대중의 확증 편향과 충돌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소수 견해와 대중 또는 권력자가 싫어하는 표현들이다. 즉 표현의 자유가 문제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불쾌한 언론에 관한 것이다.

다수의 지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왜곡되지 않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속에서 다양한 견해가 표현되고 의견의 자유 시장에서 설득과 경청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견해가 다수의 지지를 받아 공동체 의지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이 싫어하는 견해라고 해서 글쓴이를 인신공격해 의견의 발표를 단념시키거나 다른 글로 묻어서 나무를 숲으로 가리는 방식으로 의견의 유통을 방해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소위 댓글부대가 문제되는 이유다. 소수 견해가 더 이상 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시민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것이다. 2017년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63위를 기록했는데, 낮은 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분 때문에 언론들이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악성 댓글과 지능적 명예훼손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형사적 제재를 무작정 폐기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만으로 대처하기는 어렵다. 타인의 권리나 명예를 침해하는 표현에 대해 최종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형사처분에 의존하더라도 지금처럼 형벌법규 방식으로 미리 추상적인 기준을 만들어 규율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즉 사전적 자기검열을 막고 자유로운 언론에 대한 위축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따라 적절한 기준을 개별적으로 마련하는 방식이 좋다.

형벌법규로서의 명예훼손죄는 폐지하되 사안에 따라 가처분 형식으로 침해적 행위를 특정해 금지하고, 이것을 고의로 위반할 때 비로소 형사적 규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가처분 방식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적시에 사안에 맞춰 정밀하게 개별화·구체화할 수 있으며 사전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현재의 법제도 아래에서도 가처분은 가능하지만 이를 위반할 때 적절한 규제수단이 없다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일정한 유형의 가처분은 형사적 제재를 통해 집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결정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절차는 실패한다. 심각한 갈등의 조정이 필요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적 제재를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옮기게 되면 타인의 권리와 명예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언론의 자유도 진일보할 것이다.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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