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선 일감'도 뺏기는 한국 조선

수주전쟁 패인은 고임금
재료비 엇비슷한데 임금은 2~3배 수준 달해

해운업계 여전히 공급과잉…"당분간 기술보다 가격"
고부가선 수주만 고집하면 '조선 빅3' 생존 기반 잃어

한국 조선업계가 그동안 세계 1등이라고 자부하던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에서 잇따라 중국 등 후발국에 덜미를 잡히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싱가포르마저 한국 조선업체의 일감을 가로채고 있다.

◆원가경쟁력 ‘발등의 불’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2년 만에 열린 조선해양의 날 기념식에서 “싱가포르가 한국이 수주할 것으로 예상된 해양플랜트 물량을 가져간 것은 큰 충격”이라고 털어놨다. 싱가포르가 엔지니어링 회사를 인수합병(M&A)하거나 해양 도크를 새로 짓는 등 긴박하게 해양플랜트 경쟁력을 갖춰 걱정스럽다고도 했다. 업계에선 대규모 사업 경험이 없는 싱가포르 2위 해양플랜트 업체(샘코프마린)가 최근 수주전에서 세계 선두권 업체로 자부하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잇따라 누르자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국내 업계가 패인을 분석해 보니 ‘인건비’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수주 가격 면에서 중국과 싱가포르가 제시한 가격을 따라갈 수 없다는 탄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샘코프마린의 노동자 임금은 시간당 25달러, 한국은 65달러”라며 “싱가포르의 국민소득이 5만3000달러로 한국(2만8000달러)의 2배 수준이지만 값싼 동남아시아 노동자를 영입하면서 원가경쟁력에서 한국을 앞질렀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가격 공세를 벌이고 있다.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산하 조선사는 지난 8월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 CGM으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2만2000TEU급) 9척을 14억4000만달러에 싹쓸이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경우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 해양플랜트에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 부진에 경쟁력 약화

선박 제조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수준이다. 국가별로 후판, 기자재 등 재료 비용에선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은 수주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2015년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을 추진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발에 막혀 흐지부지된 상태다. 일감이 바닥나 8개 도크 중 2개가 빈 삼성중공업은 작년에 이어 올해 1500명의 인력 감축을 계획했지만 내부 반발에 막혀 600~700명 수준의 희망퇴직을 하는 데 그쳤다.

현대중공업도 해양플랜트 일감이 바닥나면서 유휴인력이 1500여 명이나 발생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한국 조선업계의 인건비는 중국의 2배 수준이며 일본과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생산성에서는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며 “고통스럽겠지만 생산 현장에서 비효율을 제거하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부가선만 수주’ 전략 바꿔야
그동안 한국 조선업계가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고부가가치 시장 공략’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황이 품질은 좋지만 가격이 비싼 한국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소화할 여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평형수처리장치 의무 장착, 강화된 황산화물 배출 규제 등 글로벌 환경 규제 도입에 따른 전세계 해운업계의 자금 압박도 상당해 2020년까지는 기술보다는 가격 중심의 발주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부가 선박에서 중국과 싱가포르의 도전이 거센 만큼 국내 조선업계도 한동안 포기했던 벌크선 탱커 등 저부가가치 선박 경쟁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홍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연구부장은 “스마트 선박과 친환경 기술로 고부가와 저부가 선박의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며 “선종을 구별하지 말고 중국과 모든 선종에 걸쳐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선종 수주만 고집할 경우 한국이 조선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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