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보다 근로시간 긴 후진국
1인당 소득차보다 삶의 질 더 나빠
한국도 여가활용에 더 신경써야"

이석배 <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
한국은 근로시간이 긴 나라로 손꼽힌다. 한국은 취업자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국인들은 이런 통계를 보면서 근로시간이 적은 선진국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푸념할지 모른다. OECD 회원국은 대부분 고소득 선진국이다. 저소득 국가와 비교하면 어떨까. 가령 베트남, 캄보디아, 케냐, 파키스탄, 르완다 등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선진국보다 형편없이 낮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나라가 선진국보다 평균 근로시간이 짧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선진국 국민은 개발도상국보다 여가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1인당 GNI 차이로 인한 삶의 질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 근로시간이 선진국보다 길다면 소득 차이뿐 아니라 여가의 상대적 부족으로 인해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의 삶의 질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1인당 GNI와 달리 성인 1인당 평균 근로시간에 대해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통계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 게재 확정된 거시경제학 논문 한 편이 이에 대한 통계 자료를 구축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의 성인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고소득 국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경향은 남성과 여성, 모든 연령대와 교육 수준에서 나타났다.

이 연구는 국가 간 비교 가능한 통계를 위해 가구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미시 자료를 이용했다. 임금을 받는 피고용자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도 통계에 포함했다. 이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성인 한 명이 1주일 동안 일하는 시간이 40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미국은 24시간,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16시간이었다. 이 연구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1인당 평균 근로시간 차이는 대략 10시간이었다. 미국의 2005년 평균 근로시간은 1900년에 비해 약 5시간 줄었는데, 개도국 성인의 근로시간은 100년 전 미국보다도 5시간 긴 셈이다.

성인 한 명당 평균 근로시간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성인 가운데 어느 정도나 일하고 있느냐(고용률)와 취업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 일하느냐다.
개도국에서는 성인 75%가 일을 한다. 중진국과 선진국에서 성인의 53~55%가 일을 했다. 취업자 평균 근로시간에선 중진국이 41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선진국은 35시간에 그쳤다. 즉, 선진국은 개도국이나 중진국보다 성인이 일하는 비율이 낮았다. 일을 해도 근로시간이 현저히 짧았다. 이는 단순히 1인당 GNI로 나타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격차보다 실제 삶의 질 차이는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논리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미국보다 평균 근로시간이 짧아, 1인당 GNI 차이보다 실제 복지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인당 GNI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성인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이 1970년대 이후 얼마나 줄었는지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짐작하건대 많이 줄었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열심히 일하던 예전 어른들의 모습을 기억해 보고 주말에 가족과 오붓하게 외식하러 나오는 사람들로 도시의 교통량이 느는 것을 보면 한강의 기적이 이룬 경제 발전의 실질적 복지 향상은 아마 1인당 GNI 증가로 측정되는 것 이상일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삶의 질 향상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높은 경제성장률이 재연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 대비 국민의 여가 시간이 충분히 많은지, 여가 활용으로 알차게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지 고려하는 것이 1인당 GNI 3만달러 시대를 앞둔 정부에 걸맞은 근로 정책일 것이다.

이석배 <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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