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EU정상회담 전에 탈퇴협상 윤곽
유로존 개혁이 영국 경제에 더 큰 타격 줄 듯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유럽선임파견관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지난해 6월24일 금요일, 필자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한 방송사 뉴스에 패널로 출연해 전날 치러진 투표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개표가 30%를 넘어서 브렉시트 찬성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앵커와의 대화는 완전히 새로운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졌다. 투표 며칠 전부터 “어떤 논리로 설득하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난감한 상황을 토로하는 브렉시트 반대진영의 고충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1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영국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총리는 테리사 메이로 바뀌었고 내각에도 브렉시트부(部)가 생기는 등 조직과 인물이 크게 바뀌었다. 보수당은 하지 않아도 되는 총선을 다시 하는 자충수를 둔 끝에 원내 단독 과반수 지위를 잃었으나 연정을 통해 간신히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국민투표 후 약해진 파운드화로 인해 영국 경제는 일시적인 호황을 누렸으나 날이 갈수록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어 EU 경제의 견조한 회복세와 대비되고 있다. EU와 유로존의 개혁을 통해 유럽통합을 더욱 공고하게 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EU로서는 강력한 지원군을 얻었다.

여름 휴가도 없이 계속된 브렉시트 협상은 11월까지 여섯 차례 이뤄졌다. 탈퇴 협상과 새로운 양자관계 협상을 동시에 하자는 영국의 입장은 협상 초기에 간단히 거부됐다. 영국은 여전히 집요하게 두 현안을 섞으려 하고, EU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단호하다. 협상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이슈는 대략 세 가지다. 영국에 있는 EU 시민의 지위, 영국이 내야 하는 재정분담금,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이다.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없지만 대체로 영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U는 영국에 있는 EU 시민의 권리에 대해 메이 총리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입장 표명이 없다고 불만이다. 분담금의 경우 영국이 내겠다는 400억유로와 EU가 받아야겠다는 600억유로 간에는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있으나, 최근 영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는 유럽통합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23년부터 자유왕래를 해왔는데 이 ‘공동여행구역’의 유지 여부는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떠나겠다는 영국의 입장에 대입해 보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아직 협상은 영국과 EU 간 입장차만 확인하는 선에서 머물러 있지만 이제는 첫 번째 고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오는 12월 중순 열리는 EU 정상회담 전에 탈퇴 협상의 윤곽이 나와야 내년에 새로운 양자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월 EU 정상회담은 마크롱이 주창한 ‘EU와 유로존 개혁과제’에 대해 발전적인 합의를 하고자 한다. 지금도 유럽은행감독청, 유럽의약품청 등 유럽기구는 영국을 떠나고 있다. 유럽 은행들은 영국과의 거래를 줄이고 자산을 이전하는 등 브렉시트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 가시화하고 있는데, 유로존 개혁은 영국 금융산업에 더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16세기 신교도와의 전쟁 끝에 프랑스는 위그노를 추방했다. 기술자와 상공업자 위주의 위그노들은 그 후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지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났고 프랑스 경제는 타격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브렉시트는 프랑스의 위그노 추방을 연상시킨다. 이번에는 영국에서 탈출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유럽선임파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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