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원인 '논란'

지질학회 등 긴급 포럼…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유발지진일 가능성 크다"
"지하에 물 주입할 때마다 미소지진 발생한 게 증거"

"한반도 지각 재배치 결과"
물 주입량 적어 연관성 의문… 포항주변 지각 0.2~1㎝ 이동

정부, 정밀진단 착수
국제전문가로 조사단 구성… 발전소 건설 잠정 중단키로

넥스지오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포항 흥해읍에 짓고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일부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이 일어난 진앙에서 600m 근처에 짓고 있는 지열발전소에서 지하에 주입한 물이 지진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목했다. 한경 DB

포항 지진 원인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열발전소의 시추공을 뚫는 과정에서 땅속에 넣은 물이 약한 단층을 자극해 지진으로 이어졌다는 주장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한반도 지각 약화라는 주장 등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한지질학회와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대한지질공학회는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긴급포럼을 열고 포항 지진 원인과 전망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국내 지진·지질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주요 4개 학회가 함께 이런 자리를 만든 건 이례적이다.

첫 발표자로 나선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이후 이번 지진이 일어나기 전 포항 흥해읍에서 수많은 미소지진이 감지됐다”며 “본진에 앞서 지난 10일 설치한 지진계 8대로 관측한 결과에서 진앙과 지열발전소가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열발전소 지하에 구멍을 뚫는 시추 과정에서 주입한 물이 지진의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네 차례 지하에 물을 주입했는데 그때마다 미소지진이 일어났다”며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관련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열발전소는 땅속 열로 물을 데워 수증기로 만든 뒤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지하 깊은 곳까지 물을 내려보내려면 파이프를 뚫어야 하는데 시추 과정이나 발전 과정에서 다량의 물을 지하에 넣는다. 이렇게 주입된 고압의 유체(물)가 땅속 단층면의 빈 공간을 벌리거나 특정 지층의 부피를 변화시켜 주변 단층에 힘을 가하면 지진으로 이어진다. 이번 지진의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처음으로 지목한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2011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일어난 규모 5.6 지진도 석유가스 생산을 위해 지하에 주입한 물이 원인이었다”며 “포항 지진(규모 5.4)도 지하자원 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경DB

반면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과도한 물 주입이 지진을 유발할 수 있지만 포항 지진은 경우가 다르다고 해석했다. 홍 교수는 “오클라호마는 수백 개 시추공에 20만㎥가 넘는 물을 주입했다”며 “반면 포항은 두 개 구멍에 1만2000㎥의 물을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울릉도는 5㎝, 백령도는 2㎝씩 일본 쪽으로 끌려가면서 지진파 속도가 떨어지는 등 한반도 지각 전체 강도가 약해졌다”며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도 한반도 지각의 힘이 재배치되면서 일어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 포항 지진으로 주변 지각이 최소 0.2~1㎝가량 이동했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강태섭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도 “물 주입 후 지진이 일어난 시점이나 1000분의 1 수준인 물 주입량만으로는 지열발전소로 보기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지진이 일어난 지 10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인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장찬동 충남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포항 지진은 하나의 원인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지각 운동 과정에서 쌓인 힘과 지질적 특성,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땅속 단층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만큼 이 지역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중앙재난안전관리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국제전문가로 조사단을 꾸려 정밀 진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간은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산업부는 진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발전소 건설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땅이 늪처럼 물렁물렁해지는 ‘액상화’ 현상이 일어난 지역을 찾기 위한 현장조사에 착수해 다음주 1차 분석 결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정종제 중대본 총괄조정관은 “총 10개소에 대한 시추와 분석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분석은 1개월 정도 걸리며 다음주에 개략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태/박상용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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