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이런 이유 - 김선우(1970~)

그 걸인을 위해 몇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中

걸인과 행인을 연결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또, 분리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허름한 행색의 남자가 걸어옵니다. 그는 내 옆의 쓰레기통에 손을 넣고 이것저것 소득 없이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먹을 걸 건넨다면, 내가 착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 막막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차에 오르는 아침입니다.

주민현 < 시인(2017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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