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1조 부담 떠안지만 중소기업은 현금흐름 개선 기대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납품대금을 지급할 때 현금이 아니라 어음으로 주는 관행을 정부가 없애기로 했다. 대기업의 어음결제에 부담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현금 지급 대신 3개월이나 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식으로 결제하는 관행이 중소 협력업체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1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기업의 어음발행 부담금’ 신설에 대한 검토 요청 자료를 기재부에 보냈다. 중기부는 기재부 소관인 부담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대기업의 협력업체 어음결제에 일정 비율의 부담금을 매기는 방안을 요청했다. 부담금 비율은 어음 발행액의 0.1% 정도로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어음 단계적 폐지’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어음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기부는 문 대통령 공약에 따라 지난 8월 법무부 등과 범(汎)정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어음 발행 부담금 신설을 검토해 왔다. 중기부는 어음제도를 당장 폐지하기는 어려운 만큼 부담금 신설 등을 통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어음을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어음거래를 하는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3.0%가 ‘어음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납품대금 중 어음결제 비중은 34.2%였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대기업의 어음결제에 부담금 부과를 추진 중인 것은 현금결제 비중을 늘려 중소기업의 자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도에서다.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면 해당 업체는 어음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은행이나 사채시장에서 7~8%에 달하는 높은 할인율로 현금화한다. 현금이 궁한 협력업체들로선 부품을 납품해놓고도 7~8%의 이자비용을 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는 1차 협력업체와 2·3차 협력업체들 간에도 비슷하다.

중기부는 어음 발행액의 0.1% 내에서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연간 어음 발행은 전자어음 500조원을 비롯해 총 1000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부담금이 신설되면 어음 발행 기업에 최대 1조원의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중소기업은 어음 발행 부담금 신설을 반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어음은 주로 대기업인 구매기업이 대금 지급을 늦춰 이익을 보는 반면 협력업체는 어음 할인료나 구매기업의 부도 위험을 떠안게 되는 비정상적인 제도”라며 “부담금 징수를 통해 발행을 억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어음 발행 부담금 신설은 1997년에도 추진됐다. 외환위기 당시 몇몇 대기업 몰락을 신호탄으로 수많은 중견·중소기업이 문을 닫으면서 원인 중 하나로 어음제도가 지목돼서다. 중기부(당시 중기청)는 어음 발행액의 0.03%를 부담금으로 물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에 준조세 부담을 늘린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접었다.

일각에서는 어음 발행 부담금을 대기업 협력업체가 대금 수령 과정에서 떠안게 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대기업이 부담금을 협력업체에 떠넘기면 하도급법 위반이 되는 만큼 섣불리 갑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이우상/김순신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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