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인 중소기업 A사는 최근 고객사 B사와 제품 공급 계약을 맺던 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공급액이 A사 한 해 매출의 20%가 넘어 그 사실을 공시하겠다고 하자 진행 중이던 계약이 갑자기 중단됐다. B사 관계자는 “계약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본사 고위 관계자가 싫어한다”며 “소문으로도 새어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A사 기업설명회(IR) 담당자가 “공시의무에 따라 즉시 또는 계약 체결 이후 24시간 내 공시하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B사를 설득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연 매출의 10%가 넘는 공급 계약은 의무공시 대상이다. 투자자들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공시의무를 위반한 기업은 경중에 따라 매매거래가 정지되거나 불성실공시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
결국 A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B사가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계약을 쪼개 계약금액을 낮추자는 것이다. 금액을 쪼갤 뿐 아니라 제품을 공급하는 시기도 수개월 동안 분할해 납품하는 조건으로 바꿨다. 하나의 계약에 대해 공시를 나눠 하면 안 된다는 ‘중요 정보 포괄적 공시제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상장사인 중소기업 C사도 최근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C사가 대기업 D사에 수백억원 규모 제품을 납품하기로 계약을 마치고 이 내용을 공시하자 D사로부터 곧장 항의가 왔다. D사 마케팅 담당자는 “왜 우리와 협의 없이 마음대로 홍보하느냐”고 했다. 해당 계약은 C사 연 매출의 40%가 넘는 대형 계약이어서 즉시 공시하지 않으면 위법이었다. C사 관계자는 “앞으로도 D사에 계속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데 공시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중소기업 IR 담당자들은 “아무리 호재가 있어도 대기업 눈치 때문에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게 중소기업 현실”이라며 “이런 경우가 흔히 겪는 ‘갑질’에 속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 주가가 저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갑질은 여기저기서 반복되고 있다. 상장사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우상 증소기업부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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