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10년 미만 기업 시총 일본 51%↓·독일 36%↓·미국 50%↑
일본·독일 인재 유동성은 막히고 디지털화에는 뒤처져
짜증과 분노야말로 변화와 혁신을 낳는 에너지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미국·독일·일본·중국 기업 혁신 능력 차이는

독일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14일 발표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8%였다. 올 성장률은 2%를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실업률은 3.6%며 수출은 계속 성장세다. 전문가들이 경기 과열을 경고할 정도다. 일본 경기도 잘나간다. 실업률은 2.8%로 완전 고용에 가깝다. 올 GDP 증가율도 3%를 넘본다. 제조강국 독일과 일본의 호황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 디지털 스타기업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존의 독자 경영 모델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10년 미만 신생기업들의 시가총액을 각국별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0년 전에 비해 시가총액이 50% 늘어났다. 창업기업이 계속 늘고 있고 소멸기업도 많은 창업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기간 신생기업이 대폭 증가한 중국은 시가총액이 무려 600%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10년 전에 비해 51% 줄었다. 독일도 36%, 한국도 5% 감소했다. 저성장에 따른 기업의 신진대사 악화가 일본과 독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장기업의 영업이익 또한 크게 늘지 못하고 있다(그래프). 일본은 10년 전에 비해 불과 11% 느는 데 그쳤다. 신규 기업의 진입이 줄어들면 기존 기업 간 과당 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기업 기술개발 활동의 징표인 국제특허출원 건수도 이 기간 독일은 9% 느는 데 그쳤고 일본은 67% 증가했다. 한국은 이 기간 260% 늘었고 중국은 무려 11배 증가했다.

일본과 독일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주목된다. 독일의 사내유보금은 수조유로에 달한다. 일본의 사내 유보 금액도 최근 5년 동안 30% 증가한 255조엔(약 2550조원)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경제주간지 레제코는 이를 두고 ‘성장할 용기가 없는 일본’이라고 평가했다.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적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혁신할 수 있는 기초적 능력이 일본과 독일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인재 확보가 기업활력 촉매제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는 기업 활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신생아는 98만1200명이었지만 사망한 노인은 130만9515명이었다. 32만8000명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든 지 오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억총활약사회’를 외치지만 기업들의 구인난 해소가 더 시급하다. 그렇지만 이민을 받아들이자는 논의는 더 진척되지 않는다.

독일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35년까지 2100만 명의 독일인이 67세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의 25%다. 기업은 정년을 연장하려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중국 또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오히려 미국의 출산율은 회복단계에 접어드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이민자들의 높은 출산율로 전체 출산 감소율이 4%에 그치고 있다.

출산율보다 미국의 더 큰 이점은 바로 우수한 이민자의 급격한 유입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노벨상 수상자 6명이 모두 이민자 출신이었다. 미국의 중소기업 소유주와 하이테크 창업자의 이민자 비율은 30%가 넘는다. 1990년에는 15%에 불과했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절반이 1세대 및 2세대 이민자가 창업한 기업이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러시아)이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남아프리카공화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인도) 모두 이민 1세대다.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게 이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최대 장점이 바로 ‘인구 구성’이라고 말했다.

디지털화도 기업의 활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있다. 독일의 경영 컨설턴트 롤랜드버거 비오른 블로칭은 “독일이 기하급수적 성장에 익숙하지 않은 제조업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두 국가는 이를 통해 제조업 강국을 건설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개방적인 기업문화와 변화를 만들어가는 자세를 체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디지털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조직문화의 변화가 중요

무엇보다 조직문화의 한계가 크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24년 전 발간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일본은 19세기 모델, 즉 계층적인 톱다운에 의한 지휘명령적 조직을 규범으로 하면서 성공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하지만 내일의 정보형 조직은 이것과 완전히 다른 조직구조와 조직원리를 요구한다. 지휘자조차 없는 소편성 재즈밴드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들이 과연 여기에 적응할 수 있느냐가 과제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독일 기업들 또한 너무 느려 플랫폼을 확대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미국과 같은 톱 수준의 프로그래머도 빈약하다. 한국보다 위계질서가 더 강한 나라가 일본과 독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개방성과 비교하면 두 나라의 움직임은 더 둔해 보인다.

혁신력의 쇠퇴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법규제 등의 한계이기도 하다. 일본은 선진국에서 가장 해고규제가 엄해 경영자가 대담한 사업재편을 진행하기 어렵다. 종신고용 문제를 의식하다 보니 외부의 인재를 활용하기 위한 운신의 폭이 좁다.
기민한 판단력이 기업 활력 '열쇠'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혁신의 유일한 원천은 짜증과 분노”라고 지적했다. 화내는 사람은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고 분노하는데, 이때의 분노가 변화를 향한 에너지가 된다는 얘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를 잡을 수 없는 분노가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를 만들었고 호텔방을 잡기 힘든 것이 숙박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변화가 느린 시대에는 지식을 모으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혁신하는 일본형이나 독일형 경영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빠른 디지털시대다. 지금 제조업에 걸맞은 체제를 갖춘 독일과 일본이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변신을 꾀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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