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부메랑 맞은 베네수엘라

만기채권 이자 2억달러 못 갚아 채무재조정 협상도 성과없이 끝나
퍼주기식 복지정책으로 재정파탄…총부채만 1500억달러 이상 추정
석유 자원만 믿고 무차별 복지를 확대해온 베네수엘라가 부분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였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4일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SD·selective default)’로 강등했다고 밝혔다. SD는 전체 신용등급 체계에서 지급 불능을 뜻하는 ‘디폴트(D)’ 등급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단계다.

S&P는 베네수엘라가 각각 2019년, 2024년 만기인 채권의 이자 2억달러를 지급하지 못해 기존 ‘CC’ 등급에서 두 단계 낮췄다고 설명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 가운데 베네수엘라 신용등급을 디폴트 수준으로 내린 것은 S&P가 처음이다. 이날 다른 신용평가사 피치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PDVSA)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SD와 같은 등급인 ‘제한적 디폴트(RD)’로 강등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는 전체 수출의 95%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좌파정부는 고유가 시대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로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2014년 이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재정 파탄에 이르렀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국가 디폴트 위험 경고음에도 지난 5월 최저임금을 60% 인상하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가 디폴트를 피하지 못할 것이란 분위기가 우세하다. 베네수엘라의 총부채가 1500억달러(약 167조3000억원)로 불어났으나 보유 외환은 15년 만에 최저 수준인 100억달러인 것으로 추산된다. 베네수엘라 채권의 70%는 북미 지역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중국과 러시아 투자자 등이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대 채권자는 20억7000만달러를 투자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다. 이어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17억9000만달러를, 미국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FMR)가 11억8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국제 금융시장 참여자는 베네수엘라가 만기를 조금 넘기더라도 채무를 계속 상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며 재협상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8월 미국이 자국 금융기관이나 개인이 베네수엘라와 금융거래하는 것을 제한하는 금융제재 조치를 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10월 원유 생산량은 2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0월 베네수엘라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95만5000배럴로, 1989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 배럴 밑으로 떨어졌다.

마두로 정부는 디폴트를 모면하고자 1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100여 명의 채권자와 대리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회의를 열고 채무 조정에 나섰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부채 가운데 600억달러(약 67조3000억원)에 이르는 투기등급 채권의 이자와 상환 조건 등을 재조정하길 원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S&P의 신용등급 강등 직전 국영 TV에서 “채무 상환을 멈추지 않겠다”며 “디폴트 상황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선택적 디폴트

SD·selective default. 채무 일부에서 부도가 발생했으나 다른 채권에서는 지속적인 상환 가능성이 있는 상태. 더욱 악화되면 ‘지급불능’을 뜻하는 D(default)로 강등될 수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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