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입 정황 첫 인정… 박근혜 재판 영향줄까 '촉각'

고법 "문형표, 청와대 지시 알았을 것"
수석들 업무수첩 내용 근거로 '합병 잘 챙겨라' 청와대 지시 인지 추론

민사 재판과 판단 달라 혼선
부정청탁 없고 적법하다는 일성신약 1심 결과와 달라

문현표(왼쪽), 홍완선

법원이 처음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인정했다. 합병 과정의 적법성을 놓고 법원 내에서도 민·형사 재판부 간 판단이 갈리면서 진실게임이 점차 혼탁해지고 있다.

◆청와대의 ‘부당 개입’ 정황 첫 인정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1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양사 합병 찬성을 목적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위법부당한 행위를 해 연금공단에 손해를 초래했으며 자율적 관리 운영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켜 엄정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배후에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문 전 장관이 ‘부당한 지시’에 따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고 이를 따른 문 전 장관이 복지부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특검의 공소사실을 인정한 판결이다.

문 전 장관 측은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 등을 통해 복지부 공무원들에게만 전달됐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지시받은 적이 없다”고 한 진술도 위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문 전 장관이 합병 문제를 잘 챙기라는 대통령 지시를 ‘인지’했다고 추론했다. 최 전 수석 진술과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근거가 됐다. 문 전 장관이 안 전 수석과 친했고 홍 전 본부장이 안 전 수석에게 투자위원회 찬성 의결 결과를 보고한 점도 ‘인지’의 근거가 됐다. ‘스모킹건’이 없는 상황에서 정황 증거로 피의자의 생각을 추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전 본부장의 배임 혐의도 인정됐다. 그가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찬성을 권유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손해액이나 이 부회장의 이득액은 산정하지 못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이 아니라 형법상 배임을 적용한 이유다.

◆일성신약 판결과 충돌
이날 법원 판단은 일성신약의 합병무효소송과 관련해 삼성 합병 자체가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지난달 19일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민사 재판부는 “공단 투자위원회의 찬성 의결 자체가 내용 면에서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개입 여부는 박 전 대통령 1심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전 장관의 ‘인지’를 인정하기 위해 청와대 지시를 전제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 전 장관 1심 이후 새로운 사실관계가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투자위원회 증인 등의 증언이 문 전 장관에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점은 2심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이미 나온 이 부회장 1심 판결과도 일부 충돌한다. 이 부회장 재판부는 삼성 합병 과정 자체가 개별적으로 부정한 청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 합병에 대한 청와대 개입을 인정하면 개별 현안에 대해서도 직접적 청탁이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상엽/고윤상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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