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걸리면 어떻게든 털려
검찰 특수수사에 빌미 주지 말자"

주로 환경·생활밀착형 업체들
대형로펌에 자문 요청 줄이어

로펌, 컴플라이언스팀 더욱 강화
디지털 포렌식 등 첨단기법 도입
적폐 청산의 칼바람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휘몰아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사실상 다른 특수수사를 모두 미뤄둔 채 적폐수사에만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사실 검찰 특수수사의 단골 대상은 기업이다. 이 때문에 ‘하명(下命)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검찰의 칼날이 기업을 향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14일 “적폐수사 바람이 한고비를 넘기고 나면 검찰이 여론 전환용으로 기업을 상대로 한 특수수사의 고삐를 죌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대형로펌을 중심으로 기업의 특수수사 관련 자문 요청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적폐수사’ 이후 걱정하는 기업들

최근 한 대형로펌에 국내 A 자동차업체가 주요 사업 내부조사를 요청했다. A사는 협력업체와의 계약관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생산품 환경규제 위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에서 환경 이슈는 가장 중요한 자문 대상 중 하나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폭스바겐 수사를 하면서 쌓은 수사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업계를 보는 눈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생활용품 등 종합 유통회사인 B사도 한 대형로펌에 혹시 있을지 모를 검찰 수사에 대비해 자문을 요청했다. 각종 인허가 건과 지난 정부 때 맺은 계약 등을 재점검해 사정당국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전면 내부조사를 하고 있다. 로펌 관계자는 “생활밀착형 기업 수사는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어 검찰이 눈여겨보는 수사 대상”이라며 “갑을 계약 관계가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법적 분쟁 소지도 많다”고 설명했다.

주요 로펌에는 이처럼 적폐수사 이후를 대비하는 기업의 자문이 줄을 잇고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라기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가맹본사가 가맹점과의 계약 문제 등으로 법률 자문을 하는 사례가 대형 로펌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맹점과의 갑을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정우현 전 미스터피자 회장이 본보기가 됐다. 정 전 회장 수사의 시작은 갑을 문제였지만 그 끝은 개인비리로 끝난 점 때문이다. ‘걸리면 어떻게든 털린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특히 평소 대비가 부족한 중소기업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속수무책인 사례가 많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기업 때리기’ 일상화된 한국형 특수수사

검찰은 적폐수사 이후를 염두에 두고 기업 여러 곳을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내사 단계인 기업이 여럿”이라며 “적폐 수사에 집중된 인력에 여유가 생기면 기업 수사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사부가 아니라 특수부가 사건을 다룬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이 일차 타깃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한국형 특수수사’가 끊임없이 기업 괴롭히기 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작은 문제를 시작으로 기업을 먼지 털듯 털어 별건을 끄집어내는 특수수사 방식 때문이다. 수사 시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수십억~수백억원대의 법률 비용은 어디 가서 말도 못하는 고충이라고 기업들은 호소하고 있다. 훗날 무죄가 나오더라도 완전 회복은 요원하다. 검찰이 책임지는 일도 찾기 어렵다.

◆컴플라이언스팀 강화하는 로펌업계

기업의 위기의식과 함께 로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6대 대형로펌은 모두 ‘통합 법률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문제를 들고 와도 로펌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비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세부적인 강점이 나뉜다.

김앤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컴플라이언스팀을 갖추고 있다. 각 세부 분야의 전문가풀을 가장 잘 갖췄다는 평이다. 세종은 검찰 수사에 대비한 형사 자문에 강점이 있다. 팀장인 김홍일 전 부산고등검찰청장을 비롯해 최성진 전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 이건주 전 대전지검장, 이두식 전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화우는 공정거래와 노동 분야의 전통 강호인 만큼 현 정부에서 발생 가능한 법률 리스크에 최적이라는 평이다. 다국적기업과의 업무 경험도 강점으로 꼽힌다.

광장과 율촌은 디지털 포렌식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화된 기업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발생 가능한 법률적 문제를 사전에 점검하는 방식이다. 이 로펌들은 자체에 검찰 못지않은 포렌식 기술을 갖추고 있다.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최정열 율촌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정치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업의 준법감시와 내부통제에 대한 시각도 크게 변했다”며 “기업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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