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은 반도체를 이을 신성장동력
글로벌 제약사도 껴안는 개방형 혁신으로
한·미 FTA '윈윈'하고 미래 먹거리 탐색을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국회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거론되진 않았지만 FTA 재협상은 진행형이다. 한·미 FTA는 미국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무역수지 적자만큼 미국의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이 미국의 일반적 인식이다.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한·미 FTA 재협상이라면 미국은 얼마만큼 무역수지가 개선돼야 만족할 것인가. 여기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무역수지는 관세, 비관세 장벽 등 무역 관련 변수뿐만 아니라 경제구조, 소비성향, 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위적 거래 장벽이 없는 자유무역만큼 공정무역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무역수지 균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공정무역과 무역수지 적자는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따라서 FTA 재협상을 추동시키는 요인으로 무역수지 적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트럼프를 설득해야 할 접점이다.

트럼프의 관심은 세간의 추측과 달리 무역수지 적자가 아닐 수 있다. 지난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회의 기조연설에서 그는 “만성적인 무역 반칙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며 “동시이익과 상호존중의 기반에서만 경제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동시이익과 상호존중’에 기초한 경제협력이라는 명분이다. 한·미 FTA는 그 하위 개념이다.

한·미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 증진 방안으로 제약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현재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는 1조1000억달러로 단일시장으로는 세계 최대다. 거래 규모가 크다는 반도체의 같은 해 글로벌 거래액은 3400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미국은 절대강자다. 2015년 현재 세계 상위 20개 제약 기업 중 미국 기업이 8개며 미국의 전 세계 제약시장 비중은 32%다. 하지만 우리의 국내 의약품시장 규모는 2016년 21조원으로 글로벌 시장의 1.8%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먹거리였던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포스트 중후장대와 반도체’로 제약산업만큼 잠재력을 가진 시장은 없다. 제약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유관한 신(新)성장동력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졌고 실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전략 산업군이다. 스위스가 8만달러의 국민소득을 유지하는 데는 제약산업의 기여가 결정적이다. 노령화 진전과 경제성장으로 글로벌 제약시장은 놓칠 수 없는 ‘블루오션’이다.
그동안 우리도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야가 좁았다. 2016년 7월에 야심차게 발표된 ‘7·7 약가정책’의 주 내용은 “글로벌 진출 신약의 약가를 우대하고 신약 개발 1·2상에만 적용하던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상을 3상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개발 신약에 국한된 혜택은 ‘국내용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제약기업들의 R&D 투자 여력이나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인센티브 강화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미 제약산업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보다 균형 잡힌 규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다국적 기업에 배타적으로 적용돼 온 규제 정책은 자승자박한 것이다.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한다. 정부 지원을 통한 산업 육성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기업을 키우는 것은 ‘시장’이다. 신약 개발은 조(兆) 단위의 막대한 자본과 10년 이상의 긴 개발 과정을 필요로 한다. 시장을 통해 이 같은 프로젝트가 조직돼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분산은 필수적이다.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확산되는 이유다. 개방형 혁신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협력은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유인과 보상은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기업에 중립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근시안적 이익 보호는 독이다. 공정한 보상 및 혁신을 위한 생태계 조성과 플랫폼 구축이 중요하다. 그래야 시장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한·미 FTA는 윈윈 게임이어야 한다. 제약산업의 협력이 지렛대가 돼야 한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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