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 '험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정규직 일괄전환 거부

노조 "공정성 기본원칙 해쳐"…취준생들도 "일자리 박탈"
교사·간호조무사 등 이어 정규직전환 논란 갈수록 확산
목표·시한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정부가 갈등 키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5월19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회의 발족식을 열고 있다. /한경DB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공개경쟁으로 채용하라’고 성명서를 냈다. 이 노조는 인천공항공사 직원 1100여 명 중 팀·처장급(1~2급)을 제외한 1000여 명이 가입한 정규직 노조다. 특정 공공기관 정규직 노조가 공식적으로 사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사 분야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5월 문재인 대통령 1호 정책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하자 공공부문 취업준비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여기에 공공부문 직군을 대표하는 산별노조들도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직원 일부는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zero) 1호 공공기관’으로 정한 인천공항공사 노조가 정규직화 반대 성명서를 내면서 노노(勞勞) 갈등이 공공기관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이다.

“공정성 형평성 없다” 반발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전환 작업이 기본원칙을 깨뜨린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첫 번째 기본원칙은 공정성이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개 채용 시험 없이 협력업체에 입사한 직원들을 채용하는 것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를 전수조사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인천공항공사 국정감사에선 제2여객터미널의 용역업체들이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친인척과 지인을 대거 채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경환 의원(국민의당)은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1만 명을 연내 정규직화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용역업체들이 네 차례에 걸쳐 1012명을 추가로 채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 사장과 관리자의 친인척 및 지인이 대거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업체 채용 방식은 공정한 심사가 없는 서류, 면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들은 “취업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게 됐다”고 반발했다. 임용고시를 치른 정규직 교사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기간제 교사, 간호대학을 나온 간호사와 그렇지 않은 간호조무사의 갈등이 가장 크게 불거졌다. 여기에 다른 공공기관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이 속속 정해지자 사내 게시판에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는데 주위에서 무임승차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선언하고 뒷짐 진 정부 화근 키워
공공부문 정규직화 선언을 해놓고 한발씩 빼는 방식의 정부 정책안도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5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뒤 7월 가이드라인에서는 “청년 선호 일자리는 (일괄 전환 대신) 공개채용 때 가점을 주는 방안을 채택할 수 있다”고 후퇴했다. 9월에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 교사를 제외했고, 지난달 연차별 전환계획을 발표하면서는 초단기 근로자와 고령 근로자 등을 제외했다. 이처럼 정부가 큰 그림만 던진 뒤 조금씩 대상을 줄이면서 기관 보고 알아서 협의하라는 식이어서 혼란이 가중됐다는 얘기다. 인천공항공사 노조는 “대통령이 직접 다녀간 ‘비정규직 제로 1호 공공기관’의 타이틀은 공사의 자랑이 아니라 부담감과 압박의 상징이 됐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정규직의 반발에 대해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했다. 한 노동전문가는 “지금까지 공공부문 정규직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면서 고연봉과 고용 안정성을 누렸다”며 “지금이라도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부 구성원간 원칙에 대한 공유 없이 정부가 목표와 시한을 정해 놓으면 노노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은지/고경봉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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