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의 유통 심리학 (1)

구매엔 생각할 시간 필요
홈쇼핑 한 시간 방송하면
쇼호스트 쉬는 10분 간에
전체 판매량 30~40% 나와
대형마트들은 작년부터 신선식품 코너에 소포장 채소를 대폭 늘렸다. 1인 가구만 겨냥한 것이 아니다. 가정간편식 판매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간편식과 소포장 채소의 결합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간편식만 달랑 데워 먹이면 식구들에게 미안할 것 같은 엄마들의 마음을 겨냥했다. 마케터들이 매출을 올리는 원투펀치라 부르는 공포와 죄의식 중 후자를 겨냥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피니싱 터치’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피자 도와 치즈 토핑을 따로 파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엄마의 손으로 완성하면 엄마의 피자가 된다고 인식하게 하는 전략이다. 유통업체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입소문은 물론 심리학의 과학적 기법을 총동원한다. 이들의 기법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쇼핑하는 ‘나의 심리’를 아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취지다.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TV 홈쇼핑에서 쇼호스트 말을 듣다가 ‘혹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구입해 본 경험을 한 번씩은 갖고 있다. 홈쇼핑 방송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쇼호스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매출과 직결된다. 인기 쇼호스트 몸값이 프로야구 선수와 견줄 만큼 높은 이유다.

하지만 쇼호스트가 말을 계속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을 때 주문 전화가 더 많이 걸려온다. 소비자가 쇼호스트 설명을 듣고 구매하려면 ‘생각할 시간’과 ‘행동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콜 투 액션(call to action)’이라 부른다.

1990년대 국내에 TV 홈쇼핑이 처음 도입된 시기에는 쇼호스트가 쉬지 않고 얘기했다. 조금이라도 더 상품에 대해 알리고 설명해야 매출이 오른다고 믿었다. 방송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쇼호스트는 계속 말을 해야 했다.

이런 믿음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한 홈쇼핑 방송에서 PD가 ‘쇼호스트도 사람인데 쉴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방송 도중에 쇼호스트가 말하는 것을 중단시키고 대신 그 시간에 상품 사진과 가격 등 상품 정보를 넣은 자막을 올렸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주문 전화가 쇄도했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이 홈쇼핑사는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쇼호스트에게 쉬는 시간을 줬다. 매출이 올랐다.

이 일을 계기로 홈쇼핑 회사들은 알아차렸다. 주문을 하려면 소비자들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을. 2000년대 초반의 얘기다.

지금도 대부분의 홈쇼핑 방송이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준다. 한 시간 방송에 평균 3~4회 정도 쇼호스트가 쉬는 시간이 있다. 이 10분 정도 시간에 전체 판매량의 30~40%가 나온다. 쇼호스트가 쉬는 동안 화면에는 상품을 시연하는 장면이 주로 나온다.
패션 상품의 경우 모델이 입은 옷을 비춘다. 식품은 주방에서 요리하는 장면이 나간다. 화장품은 사용 전후의 비교 사진을 보여준다. ‘매진 임박’ 등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는 문구도 집중적으로 이 시간에 내보낸다.

‘콜 투 액션’에 숨어 있는 심리학적 요소는 편도체의 반응이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물건을 사려고 집어들 때 뇌의 부위 중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편도체는 공포 위험 불안감 등을 처리한다.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공포와 연관돼 있다. 일단 구매 욕구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이를 잠시 줄여줌으로써 좋아하는 물건을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만 최근에는 콜 투 액션 시간에 과거처럼 극적으로 판매량이 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진 영향이다. 홈쇼핑에서 모바일 매출 비중은 현재 50%에 육박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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