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9)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

초현실적 풍광에 깨달았네…자연은 최고의 예술가임을

외계 행성 불시착? 사막·소금분지…극한의 환경이 만든 극적인 비경

데스밸리에서 가장 우주적인 풍광을 보유한 자브리스키 포인트. 일출이나 일몰 무렵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세상엔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꽃이 만발한 들판일 수도, 푸른 바다일 수도. 울창한 숲일 수도 있다.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모지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이 그렇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계곡은 서반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외로운 땅 중 하나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을 방증하듯 여름에는 온도가 섭씨 50도까지 치솟고, 어떤 해에는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데스밸리에는 극한의 환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극적인 비경이 숨어 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벌거벗은 산맥,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골짜기, 찬란하게 빛나는 소금 평야,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사막, 척박함을 딛고 자라나는 생명까지. 데스밸리에 머무는 내내 생각했다. 어쩌면 지옥은 천국보다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데스밸리=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죽음이라는 이름의 계곡

동이 트기 전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리지크레스트(ridgecrest)를 떠난다. 178번 도로의 창밖은 그저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의 연속이다. 한 시간 반쯤을 달려 파나민트 산맥에 들어서자 반듯했던 도로가 곡예하듯 넘실대기 시작한다. 능선을 하나둘 넘을 때마다 눈앞에는 기괴한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대지 위에 황토빛 산맥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산꼭대기 밑에는 사하라 사막을 한 조각 떼어다 놓은 듯한 모래언덕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지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경한 풍경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외딴 행성에 불시착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데스밸리는 아마르고사(Amargosa) 산맥과 파나민트(Panamint) 산맥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분지이자 협곡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무려 220㎞, 폭은 최대 25㎞에 달한다. 전체 면적은 약 1만3000㎢, 그랜드 캐니언의 2.5배 규모다.

데스밸리에는 약 9000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골드러시 시대 서부로 향하던 사람들, 포리 나이너스(49ers)에 의해서다. 죽음의 계곡이란 섬뜩한 이름이 붙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1849년 겨울, 금을 찾아 솔트레이크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역마차를 끌고 계곡에 들어섰다. 식량과 물은 떨어졌고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각자 살길을 찾겠다며 무리를 이탈했다. 남겨진 자들은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전 재산과 다름없는 마차를 태워 불을 때고, 말을 잡아 육포를 만들어 간신히 목숨을 연명했다. 절망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들은 파나민트 산맥을 지나 계곡을 탈출했다. 그때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굿바이 데스밸리.”

바람이 만든 걸작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공원 내에 있는 마을이자 관광거점인 스토브파이프 웰스(Stovepipe Wells)와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 지역의 주요 포인트만 돌아봐도 하루가 빠듯하다. 여름은 너무 뜨거워 여행이 거의 불가능하고, 겨울은 온도는 괜찮으나 해가 짧다.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충분한 여유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가장 먼저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즈(Mesquite Flat Sand Dunes)로 향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사막의 모습, 즉 사구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공원 내에 형성된 5개의 사구 중 가장 인기가 좋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구에 진입한다. 정해진 트레일은 없다. 바람이 미처 앗아가지 못한 발자국을 따라 걷거나, 스스로 길을 만들며 모래 언덕을 탐방해야 한다. 첫인상은 해변의 모래사장처럼 다소 난잡하다. 자갈이 섞인 모래더미 위로 고사한 메스키트 나뭇가지와 덤불, 수많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한참을 걸어도 상상했던 사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의구심을 품은 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능선을 몇 번이고 넘는다. 외투는 벗어 던진 지 오래다. 한여름에 왔더라면 언덕 중 하나가 내 무덤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평도 잠시, 걸으면 걸을수록 깊어지는 사막의 풍경에 감탄이 흘러나온다. 한참을 걸어 가장 높은 모래언덕에 닿았다. 주변은 온통 하얗고 고운 모래의 물결만이 가득하다. 저 멀리 맞은편에는 빗물에 침식돼 형성된 화강암 계곡, 모자이크 캐니언(Mosaic Canyon)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메스키트 사구 역시 여느 사막의 모래언덕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만든 작품이다. 서쪽에서부터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분지에 고립돼 차곡차곡 쌓였다. 그 위로 또 다른 바람이 이리저리 불며 언덕을 조각했다. 모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메스키트 샌드 듄즈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일출이나 일몰 무렵이다. 사막은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할 때마다 능선들은 부드럽게 춤을 춘다. 데스밸리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막 한가운데 누워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헤아려 보는 것도 낭만적이다.

북미에서 가장 낮은 땅

어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북미 최고봉인 휘트니 산(Mount Whitney)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반대로 가장 낮은 곳을 찾아 떠난다. 데스밸리의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는 해수면보다 무려 85.5m 아래에 있다. 서반구에서는 가장 낮고, 지구상에서는 8번째로 낮은 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 이곳은 본래 바다였다. 그 후 큰 지각변동이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땅이 솟아나 계곡을 형성했고 그 사이에 물이 고이면서 호수가 생겼다. 그러나 계곡 바닥의 지속적인 침강과 기후 변화까지 겹치면서 물은 증발하고 소금 단층만 남았다. 입구 맞은편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 한가운데 ‘해수면’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달려 있다. 원래대로라면 저곳까지 바닷물이 차 있어야 하는 셈이다. 물 빠진 바다 밑바닥을 거닐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하다.

배드워터 분지 입구에서 약 1㎞를 걸으면 소금 평야가 나타난다. 워낙 지대가 낮은 탓에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호수가 형성되기도 한다.

배드워터란 이름은 이곳의 물이 마실 수 없는 소금물이라 하여 붙여졌다. 궁금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바닥을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짜다 못해 쓴맛까지 느껴진다. 사막과 더위, 그리고 소금물이라니. 좋지 않은 조합임은 틀림없다. 쩍쩍 갈라진 대지 위로 소금덩이들이 눈의 결정처럼 굳어 있다. 웅덩이 주변에는 난생 처음 보는 희귀식물이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한 땅이지만 생명이란 것은 참으로 강인하다. 무려 900여 종에 달하는 사막성 식물군과 다양한 야생동물이 데스밸리에 서식하고 있다. 트레일의 끝에는 소금 호수가 펼쳐져 있다. 미처 마르지 못한 빗물이다. 이곳의 연간 강수량은 50㎜도 채 안 되지만 워낙 지대가 낮은 탓에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호수가 형성되기도 한다. 가장 낮은 땅 위로 드리워진 파나민트 산맥의 반영이 유난히 신비롭다.

배드워터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아티스트 드라이브(Artist Drive)라고 불리는 일방통행길이 있다. 협곡을 관통하는 약 14㎞의 도로인데 아티스트 팔레트(Artist Pallette)라고 부르는 지점이 하이라이트다. 화산 폭발로 인해 철이나 붕소 같은 원소에 산화가 발생하면서 산 전체를 파스텔톤으로 물들였다. 최고의 예술가는 자연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악마의 골프 코스(Devil’s golf course)도 빼놓을 수 없다. 날카롭게 솟은 암염이 진흙과 뒤섞여 독특한 지형을 이룬다. 악마가 아니고선 도저히 이곳에서 골프를 칠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악마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기이한 모양새다.

우주의 풍경을 마주하다

퍼니스 크릭 로드(Furnace Creek Rd)를 따라 데스밸리 남쪽으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해발 약 1700m 정상에 위치한 단테스 뷰(Dante’s View)에 오른다. 산길을 따라 절벽 쪽으로 걸어가니 그야말로 충격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계곡 최저점인 배드워터 일대부터 최고점인 텔레스코프 봉우리(Telescope Peak)까지, 거칠고 광활한 데스밸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굳어 버린 사막과 혈관처럼 뻗은 소금 물줄기는 마치 큰불이 난 직후의 대지를 연상케 한다. 오만가지 색을 뒤집어쓴 바위산들은 속이 울렁일 만큼 경이롭다. 정말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지옥 말이다.

단테스 뷰에서 내려와 또 다른 전망 포인트인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로 향한다. 이곳의 지명은 크리스토퍼 자브리스키(Christopher Zabriskie)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폴란드 이민자의 후손인 그는 데스밸리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오르니 널찍한 전망대가 나타난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데스밸리에서도 가장 초현실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메마른 호수에서 나온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황갈색 사암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골이 깊게 팬 산등성이는 마치 오래된 지구의 주름살 같기도 하고, 땅이 융기하던 찰나를 정지시켜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은 맨리 비콘(Manly Beacon) 봉우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어둠이 깔릴수록 죽음의 계곡이 지닌 생명력은 짙어진다.

붉게 물든 바위산이 커다란 파도가 돼 출렁인다. 우주의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다.
여행정보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다.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당 25달러이며 1주일간 유효하다. 미국 내 다른 국립공원을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연간 패스(80달러)를 구매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공원은 1년 내내 개방하지만 여행 적기는 겨울이다. 여름철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날씨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호텔, 식당, 주유소, 비지터 센터와 같은 편의시설은 퍼니스 크릭 혹은 스토프파이프 웰스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데스밸리는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 중 하나다. 제한 속도를 준수하고 운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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