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역방향 도로를 확보하라"
트럼프 근접 경호 맡았던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
호위경로 긴급변경해 위기막아

원래 경로로 간 싸이카 3대
시위대 물병·야광봉 그대로 맞아

안전슈트 언감생심…부상 속출
위험수당 월 6만원 불과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가 지난 5월10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차량을 근접 경호하며 이동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을 마치고 청와대를 나서려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 근접 경호 에스코트를 하던 ‘싸이카 부대’ 노태호 경감의 무전기로 비상사태를 알리는 무전이 빗발쳤다. 트럼프 대통령 차량이 지나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반미 시위대가 도로 점거를 시도한 것. 시위대는 물병과 야광봉을 투척하며 현장 경찰관들을 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국빈 방문한 우방국 대통령에게 외교적 결례를 범하는 것은 물론 자칫 트럼프 대통령이 다칠 가능성까지 있었다.

청와대 경호처는 광화문 광장에서 역방향 도로로 가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노 경감은 즉시 현장 부대원에게 역방향 도로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광화문광장을 150m 앞둔 적선동 로터리. 최종 지시가 내려와야 할 순간 통신 장애로 무전기가 불통이 됐다. 아찔한 순간, 노 경감은 역방향 도로를 택했다. 그는 “경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근접 경호를 담당한 싸이카 5대 중 위장을 위해 원래 경로로 갔던 3대는 시위대의 물병과 야광봉을 고스란히 맞았다. 현장의 빠른 판단이 ‘나라 망신’을 막은 셈이다. 청와대 경호처도 당시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근접 경호는 내게 맡겨라”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을 마치고 기분 좋게 한국을 떠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온몸으로 앞을 뚫은 ‘현장의 숨은 영웅’ 싸이카 부대가 있었다. 이들의 공식 명칭은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다. 110명으로 구성된 싸이카 부대는 휴가도 취소한 채 전원 비상근무를 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근접 경호를 담당했다.

행사장이나 중요 인물이 묵을 숙소 주변에는 인가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 이들조차 금속탐지기 등을 동원해 철저한 검문·검색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동 중에는 언제든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경찰청 교통순찰대 소속 싸이카 30여 대가 의전 차량을 호위하며 이에 대처하는 임무를 맡았다. 대열 최전방에서 길을 트고 수상한 차량이나 시위대가 나타나면 몸을 던져 막기도 한다. 대원 중 절반 이상이 10년 넘게 싸이카를 탄 베테랑이지만 종종 순직자가 나오는 이유다.

1200~1700cc 배기량의 대형 싸이카들은 대형을 갖추고 이동하는 모습 자체로 의전 역할을 한다. ‘갈매기 모양’ 대열은 이들의 상징이다. 대형을 유지하면서도 교통 통제 등 업무를 수행하려면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장정진 교통순찰대장은 “아이스하키를 하려면 일단 스케이트를 자유자재로 탈 수 있어야 하듯이 싸이카에 완전히 숙달돼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며 “싸이카가 워낙 배기량이 크고 조작이 힘들어 2종 소형 면허가 있는 경찰관도 숙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호 대상이 멀리 떨어진 곳을 육로로 방문할 때 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의전차량이 한순간도 멈춰서는 일이 없도록 적재적소에서 교통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백여 가지에 달하는 예상 경로도 미리 암기해둬야 한다. 장 대장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임무지만 행사를 잘 마치고 국빈을 안전히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기동력 살려 ‘민생 치안’도 거뜬

싸이카 부대는 평시에는 민생 치안의 한 축을 담당한다.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급박한 신고가 접수돼도 일반 경찰 차량이 정체를 뚫고 제때 현장에 도착하기는 쉽지 않다. 골목과 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싸이카의 기동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서울청 교통순찰대는 한 달에 10건씩 일선 경찰서의 요청으로 긴급 출동해 현장에 먼저 도착한다.

근무 중 위급한 환자를 보면 차량 앞길을 통제해주기도 한다. 지난 3월에는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던 생후 120일의 아기가, 6월에는 호흡곤란과 심장 통증을 호소하던 시민이 싸이카 덕분에 생명을 구했다. 심장이식 수술에 이용될 심장을 김포공항에서 받아 종합병원까지 이송할 때도 앰뷸런스보다 빠른 싸이카의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땐 ‘목숨을 내놓는’ 심정으로 달린다. 장 대장은 “국빈 경호를 무사히 마쳤을 때도 성취를 느끼지만 사람 생명을 살렸을 때의 만족감은 더 크다”며 웃었다.

◆목숨 걸고 달리는데…직무수당6만원

경찰 오토바이의 내구연한은 내부 규정상 7년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교통순찰대에는 10년이 넘은 싸이카들이 즐비하다. 고속으로 달리며 업무를 수행하던 중 낡은 기계부품에 문제라도 생기면 경찰관의 생명까지 위험해진다.
싸이카 부대에 근무했던 한 경찰은 “오토바이가 고장나면 세워 놓는 일선 경찰서와 달리 싸이카는 업무 수행을 위해 매일 타야 한다”며 “내구연한이 지난 싸이카를 예산이 없다며 교체하지 않는 건 안전 불감증”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장비 부실은 큰 문제다. 싸이카 부대는 고속도로에서도 달려오는 차를 막고 길을 안내해야 하지만 이들이 목숨을 의지하는 헬멧은 일반 교통경찰과 똑같은 것이다. 전신을 보호하는 고성능 안전 슈트는 언감생심이다. 부대원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너무 낮은 직무수당에 대한 지적도 많다. 이들이 받는 위험수당은 월 6만원에 불과하다. 교통경찰로 분류돼 직무수당도 20만원으로 일선 경찰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싸이카 부대를 기피하는 경찰관도 많다.

한 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원은 “서울청은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지방은 싸이카 부대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어 반강제적으로 잔류시키는 사례도 있다”며 “직무수당을 올리지 않으면 구인난은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고 토로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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