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의 중국혁명 전략처럼
농촌·중소도시에서 세력 키워
중국 스마트폰 1위 오른 '은둔의 경영자'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2015년은 중국 토종 스마트폰 업체들의 반격이 본격화한 해였다. ‘짝퉁 아이폰’ 제조업체로 불리던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당시 중국 스마트폰 업계에선 “오포·비보라는 업체가 샤오미와는 정반대 전략으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샤오미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젊은 층을 상대로 온라인을 통해서만 스마트폰을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오포·비보는 중국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오프라인 매장을 개설해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혹자들은 오포·비보의 이 같은 영업전략이 중국 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썼던 전략과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농촌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뒤 도시를 공략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닮은 데가 많다는 것이다. 2015년만 해도 중국 대도시 지역에선 인지도가 떨어졌던 오포·비보는 2016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애플뿐 아니라 중국 스마트폰업계의 전통 강자 화웨이, 샤오미 등도 오포·비보에 무릎을 꿇었다. 오포·비보의 이 같은 성공 신화를 이끈 주역은 돤융핑(段永平) 부부가오 회장이다.

피처폰 성장세 꺾이자 스마트폰 생산

올해 56세인 돤 회장은 중국 공산혁명의 발상지인 장시성 출신이다. 1977년 저장대 무선전신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돤 회장은 산둥시 이화그룹 산하 소규모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다. 이 공장은 이후 중국 학습용 컴퓨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샤오바오왕으로 성장했다. 샤오바오왕 재직 시절 돤 회장은 ‘쑤보르’라는 게임기를 개발·생산해 연 매출 10억위안(약 1600억원)이 넘는 히트 상품으로 키워냈다.

1995년 돤 회장은 직접 창업을 결심했다. ‘부부가오(步步高)’라는 이름의 전자제품 제조 기업을 세웠다. 중국말로 ‘점점 높아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부부가오는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MP3플레이어, DVD플레이어 등을 주로 생산했다. 그러다 자회사 부부가오커뮤니케이션이큅먼트를 세워 피처폰 생산을 시작했다. 부부가오가 만든 피처폰은 중국 토종업체가 생산한 제품치고는 품질이 우수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2000년에는 노키아 모토로라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피처폰 시장의 성장세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부부가오도 위기를 맞았다. 이때 돤 회장은 부부가오 산하에 오포와 비보라는 두 개 회사를 차례로 설립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때가 2009년이었다. 오포는 저가 스마트폰을, 비보는 중·고가 스마트폰을 만들어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한다는 게 돤 회장의 구상이었다.

오프라인 유통망·독특한 기능으로 1위 등극

돤 회장이 오포·비보를 설립했을 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삼성전자 등 글로벌 업체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중국 토종업체는 화웨이 쿨패드 정도가 있었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엔 역부족이었다. 돤 회장이 주목한 건 중국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은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 보급률이 매우 낮았다. 소득 수준도 높지 않아 애플의 아이폰을 사려면 몇 개월치 월급을 모아야 했다. 돤 회장은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지역에 오포·비보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대리점을 빠른 속도로 늘려 나갔다. 중국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대리점은 오포·비보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돤 회장은 대리점 유통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리점 점주들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돤 회장이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조금씩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동안 토종 기업 중 샤오미와 화웨이가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샤오미는 ‘가성비’(가격대비 성능)가 뛰어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화웨이의 경우 탄탄한 기술력 덕분에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중장년층이 선호했다. 돤 회장은 스마트폰의 전반적인 기능보다는 소비자 체험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기능과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중·저가 스마트폰에 애플 아이폰 못지않은 고화소 카메라를 장착하거나, 고속 충전 및 장시간 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는 식이었다. 돤 회장의 이 같은 전략은 주효했다. 2014년 6.1%였던 오포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7년 1분기에는 18.2%로 수직 상승했고, 같은 기간 비보의 점유율도 6.6%에서 14.1%로 높아졌다.

‘중국의 워런 버핏’ 주식 투자도 수준급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에서도 스타 기업인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은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돤 회장은 2016년 오포·비보가 중국 스마트폰업계 1위 자리에 오를 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공개 석상이나 언론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3월 미국의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를 한 것을 계기로 돤 회장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 돤 회장은 자신을 애플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해외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애플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2013년 이후 개인 블로그에 애플의 제품과 주가 등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이 최근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돤 회장은 “애플이 중국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른 나라에서 펼치는 ‘고가전략’을 중국에서도 고집하다가 토종 업체들에 반격의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애플의 아이폰은 운영체제(OS) 등은 훌륭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우리가 애플을 앞섰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돤 회장은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도 불린다. 회사 경영 외에 투자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그는 2002년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는 중국의 인터넷 기업 넷이즈가 닷컴거품 붕괴의 여파로 주가가 급락할 때 지분 5%를 주당 16센트에 매입했다. 이후 넷이즈 주가가 40달러가 됐을 때 전량 처분했다. 2012년에는 중국의 전통주 제조업체 마오타이 주식도 주당 180위안에 매입했는데, 이 회사 주가는 최근 1년 새 가파르게 상승해 640위안대를 기록하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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