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

수차례 실패에도 일어선 'IT업계 오뚝이'
창업 30년차.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맨몸으로 막아서야 했다. 그때마다 쓰러지고 업종까지 바꾸며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오른쪽 안면이 마비되고 한쪽 귀의 청력도 상실했다. 1988년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회사를 연 매출 2400억원 규모로 키운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53) 이야기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반도체 후공정업체인 바른전자는 낸드플래시 반도체로 USB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메모리 저장장치도 만든다. 2014년부터는 자체 브랜드인 ‘골드플래시’ USB를 세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웨이퍼 위에 만들어진 메모리 반도체를 쪼개서 포장하는 후공정업체들은 많지만, 자체 브랜드의 메모리 저장장치를 생산하는 곳은 삼성전자와 바른전자 둘뿐이다. 세계적으로도 채 10곳이 안 된다. 100여 명의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연구시설을 갖추고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다.

100만원으로 창업

김 회장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였던 부친이 폐암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별세하면서 중·고등학교 학비를 내기 힘들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그는 “갑자기 닥친 궁핍도 걱정거리였지만 어느새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이 더 힘겨웠다”고 돌아봤다. 군복무를 마친 1988년, 25세의 그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창업자금 100만원은 지인들에게 빌린 돈과 ‘카드깡(신용카드로 물건을 산 것처럼 꾸며 대출을 받는 것)’으로 충당했다. 신용카드는 은행에 다니던 친구의 보증으로 발급받았다.

초기에는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사업만으로는 돈을 못 벌어 당시 한창 유행하던 음악다방에서 DJ로 일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사업은 서울 용산과 청계천 일대에서 전자 부품을 사 PC를 조립해 팔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PC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사업은 빠르게 상승세를 탔다.

업무용 PC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자 곧 “컴퓨터를 잘하는 직원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전까지 손으로 작성했던 각종 서류를 전산화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력파견업’이라는 업종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컴퓨터에 숙달된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기업 업무를 지원하는 코리아맨파워를 설립했다. 중국과 수교가 이뤄진 이듬해인 1993년에는 중국까지 진출해 PC 판매 사업을 했다.

두 번의 위기

한창 뻗어나가던 사업은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발목이 잡혔다. 사업자금이 말라가는 가운데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필사적인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중국 단둥 인근 도로에서 그가 탄 차량의 운전사가 즉사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던 시점이어서 찢어진 얼굴에 응급처치만 받고 회사로 출근했다고 한다. 이 사고 여파로 오른쪽 안면마비가 왔다. 김 회장은 지금도 말을 할 때 입술 한쪽을 움직이지 못한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스트레스에 따른 돌발성 난청이 악화돼 오른쪽 귀 청력의 99%를 잃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김 회장은 1998년 회사 지분을 소프트웨어업체인 KDC정보통신(현 바른테크놀로지)에 넘겼다. KDC정보통신에 남아 최고경영자(CEO) 역할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그의 ‘신분’은 전문경영인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2003년 경영자인수(MBO) 방식으로 다시 지분을 사들여 오너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을 일구겠다”는 목표를 세운 김 회장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갔다. 회사는 4년 만에 총 매출 5000억원에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연대보증이 화근이었다. 사업이 한번 삐걱거리자 자금사정이 나날이 악화됐다. 김 회장은 “100명이던 직원이 1000명까지 불어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데도 실패했다”며 “무리한 목표가 회사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뺄셈 경영의 의미

회사를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2010년 인수한 것이 바른전자다. 당시 바른전자는 사업 규모가 영세하고 실적도 변변찮았다. 미국에 있는 거래처 두 곳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80%에 이를 정도로 사업구조도 불안했다. 김 회장은 인수 직후 자신의 집까지 팔아 투자금을 조달하며 공장 증설에 나섰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며 메모리 카드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하고 띄운 승부수였다.
이 같은 판단이 들어맞아 그가 인수하기 전 매출 600억원이던 회사는 8년간 4배로 성장했다. 거래처도 다변화해 지금은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거래처가 한 군데도 없다.

30년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김 회장이 다다른 결론은 ‘뺄셈 경영’이다. 흔히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목표 자체가 무리하게 설정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사업이 6~7가지가 있으면 실제로 잘할 수 있는 것은 한두 가지밖에 안 된다”며 “경영은 벌이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훈은 코리아맨파워와 KDC정보통신을 경영하며 경험한 두 차례의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금난에 빠진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밤늦게까지 돈 빌릴 곳을 찾아다녔던 것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라며 “먼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2014년 사물인터넷(IoT) 센서 관련 사업 진출을 모색하며 먼저 반도체 솔루션사업을 정리했다. 연 매출 200억원으로 작지 않은 규모의 사업이었지만 비주력 부문을 먼저 정리하고 신규 사업에 자원을 쏟아넣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어려움을 겪으며 직원들과의 소통도 배웠다. 그는 많게는 1주일에 한두 번, 적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경영 방침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일상사와 신변잡기도 담는다. 김 회장은 “2010년 바른전자를 인수하고 직원들을 만나보니 다들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상태로는 업무 효율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내 생각을 투명하게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바른전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장장치를 만드는 재료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며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서다. 김 회장은 IoT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김 회장은 “1990년대 초반의 PC, 2010년 전후의 스마트폰이 그랬듯 IoT 관련 시스템반도체와 관련 제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IoT 관련 사업을 키워 90% 이상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문의 매출 비중을 최대한 낮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힘든 나를 일으킨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1998년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사진)은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경영하던 코리아맨파워가 어려움에 빠져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마침 3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이듬해 분양한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164㎡형을 6채까지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고민하던 그는 병원 서가에 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눈길이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하던 책이었다. 김 회장은 밤새워 책을 읽으며 정 회장의 도전의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음이 들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다 날이 밝자마자 회사로 달려갔다. 의사는 “지금 퇴원하면 오른쪽 귀를 쓰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경영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결국 오른쪽 귀 청력의 99%가 사라졌다. 김 회장은 “책을 다 읽고 난 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처럼 들떴던 그날 새벽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회사를 팔고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했다면 청력이 살아났겠지만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왼쪽 귀로만 듣고 있다.

창업으로 성공한 김 회장에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경영의 길을 묻는 젊은이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김 회장은 “얼마나 위기의식과 간절함을 갖고 사업에 나섰나”고 되묻는다. 그는 “창업 이후 30년간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나보다 큰 고난과 고통을 겪고도 실패해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을 봤다”며 “단순히 회사 다니기가 싫어서, 혹은 스타트업의 좋은 이미지에 취해서 창업에 나서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섭 회장 프로필

△1964년 서울 출생 △1983년 경문고 졸업 △1988년 인천대 재학 중 창업 △1990년 코리아맨파워 사장 △2003년 KDC정보통신 회장 △2009년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2010년 바른전자 회장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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